연인관계 회복 도움 '보람' 음란한 사회 시선 '상처'…"밝은 성문화 정착되길"

정오를 넘긴 시간, 김진성(가명·36) 씨는 하루를 시작한다.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한 10평 남짓한 가게. 김 씨는 오늘 판매할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게 청소를 한다. 가게와 문 하나로 이어진 방에서 김 씨는 고객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 가게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남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과 여성, 즉 동성끼리는 괜찮지만 남성, 여성 고객은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한다. 이성인 고객이 가게에 먼저 와있을 경우 바로 나가버리는 고객도 있다. 고객의 손과 눈길이 머문 그곳에 각자의 은밀한 사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4년째 성인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진해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나온 김 씨는 군대를 다녀온 후 바로 조선소에 취업했다. 용접공으로 괜찮은 삶이었다. 29살 산업재해를 당하기 전까지 말이다. 느닷없이 닥친 일이 전환점이 됐다. 지금의 가게를 열었고 빨리 자리를 잡았다.

"32살이던 2012년 5월 이곳에 가게를 열었어요. 가까운 친척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창업했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부모님도 제가 이 사업을 시작한 걸 아셨죠. 전 순전히 사업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시장만 보고 진입한 거죠. 이 사업은 시즌도 불경기도 없거든요. 어느 장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성인용품점은 특히 위치가 중요해요. 가게 노출뿐 아니라 출입구 위치까지 생각해야 하죠. 탁 트인 대로변에 있으면 손님이 선뜻 들어오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건물 2층에 위치하고요. 손님은 갓 성인이 된 20대부터 60대까지 와요. 친구, 후배, 옛 회사 동료…아는 사람이 올 때도 있고요. 손님이 많을 땐 6, 7명 정도. 물론 한 명도 안 올 때도 있죠. 제품을 추천해드리기도 하고 성생활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한테는 상담도 해드리고 있어요. 덕분에 부부관계, 연인 관계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 보람을 느끼죠."

김진성(가명) 씨가 운영하는 창원시 진해구 성인용품점 내부 모습. 김 씨는 신분 노출을 꺼리며 사진 촬영을 거절했다.

김 씨가 취급하는 제품은 국산과 일본산이 절반씩 된다. 성인용품 하면 일본산이 더 좋을 거라는 고정관념(?)도 있지만 요즘은 국산 제품도 질이 좋아져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판매하면서 황당한 일도 있었어요. 2014년까지 남성용 자위 기구는 음란물로 분류돼 판매가 불법이었어요. 여성 성기 모양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회통념에 어긋난다고요. 어이없게도 남성 성기 모양을 한 여성용 자위 기구는 합법이었어요. 똑같은 자위 기구인데 말이에요. 다행히 대법원에서 합법 판결을 하면서 세상에 나왔지만 아직도 이 시장엔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죠."

가게는 연중무휴.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비워야 할 때는 지인에게 부탁도 하지만 대부분 김 씨 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김 씨는 남들처럼 일상을 즐긴 지도 오래됐다.

"낚시를 좋아해요. 하지만 가게를 봐야 하니까 갈 수 있을 때가 거의 없어요. 손님을 기다리는 이 방에서 오후 1시부터 자정까지 있어요. 그러니까 돈이 조금 생기면 TV와 컴퓨터부터 더 좋은 걸로 바꿔요. 오랜 시간 함께하니까."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30대 중반 미혼자인 김 씨는 결혼할 상대가 생기면 이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혼한 적이 있어요. 결혼하기로 하고 상대방에게 어렵게 성인용품점을 한다고 밝혔는데 그쪽에서 받아들이지 못했죠. 그래서 상처도 됐고 포기하는 것도 많아졌고…. 이후론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접어야지, 다른 일해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어요. 저는 이제 담담해졌지만 다른 사람들 시선은 정말 견디기 힘들 거예요. 성생활, 성인용품 등 이런 걸 음란하다고 보는 시선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지 않게 만드는 거죠. 우리 사회는 충분히 건강해요. 성과 관련된 것들을 쉬쉬하고 음지로 내모는 게 사회를 더 나빠지게 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김 씨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성인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저도 그렇고 성인용품을 사고 또 사용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이상하거나 성적으로 밝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똑같은 사람이에요. 보다 즐거운 성생활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죠. 성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식욕과 같은 거잖아요. 밥 먹는 것, 음식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인용품을 사용하는 게 왜 이상한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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