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에서 사부작] (9) 4코스 섬노래길 마을 고샅고샅

남해섬의 남쪽 끝자락, 미조면은 남해 읍면 중에서 가장 작다. 이 작은 면이 남해에서 가장 많은 20개 섬을 거느리고 있다. 지도를 보면 미조면에 우뚝 솟은 망산(286m) 자락이 바다 쪽으로 두 팔을 벌려 이 섬들을 너른 품으로 불러들이는 모양이다. 호도(범섬), 조도(새섬), 사도(뱀섬), 장도(노루섬) 등 동물 이름이 붙은 섬들이 있고, 팥섬, 콩섬, 율도(밤섬), 애도(쑥섬), 미도(쌀섬) 등 곡식 이름이 붙은 섬들도 있다. 이 중 호도와 조도에만 사람이 산다.

남해바래길 4코스 섬노래길은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이 섬들을 끼고 걷는 길이며, 망상 정상에 올라 섬들을 한 번 품어보는 길이다.

◇미조항과 사항마을, 미조마을

남해군 미조항은 지난 1971년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일찍부터 꽤 큰 항구였던 것 같다. 2014년에는 해양수산부 '아름다운 어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미조항엔 '남해 어업전진기지'와 '남해의 미항(美港)'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이 매력적인 항구를 끼고 사항마을, 미조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미조항은 풍광이 아름다워 남해의 미항(美港)으로 불린다. 미조항 북항과 정면의 미조섬.

미조항은 북항과 남항으로 나뉘는데 그 사이에 사항마을이 있다. 사항마을은 모래 위에 서 있다고 한다. 섬과 섬 사이에 모래가 쌓여 섬이 연결되고 육지가 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단다. 남항은 아마 남해에서 가장 어선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지 싶다. 남해군수협이 남항에 있다. 수협 바로 앞 활어 위판장에서는 매일 경매가 열린다. 매년 5월 보물섬 미조 멸치 축제가 이곳에서 벌어진다. 이렇게 큰 어항이 있는 까닭에 사항마을에는 작지만 유흥가도 있다.

북항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다 한가운데 미조섬이 우뚝하다. 미조(彌助)는 '미륵(彌勒)이 돕는다'는 뜻인데, 오래전 남해섬의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미조섬이 마치 미조항의 수호신 같은 느낌이다. 북항에서 미조섬을 보다 뒤를 돌면 바로 천연기념물 제29호 미조리 상록수림이다. 이 숲은 처음에는 풍수지리에 따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층층이 서로 다른 상록 활엽수림으로 가득한 놀라운 숲이 됐다. 얼핏 봐도 주변과 비교해 그 풍성함이 남다르다.

미조마을은 이 상록수림을 경계로 사항마을과 나뉜다. 국도 19호선 굽은 도로를 따라 미조마을로 들어오는 길 초입 언덕에 무민사(武愍祠)가 있다. 고려말 명장 최영(1316~1388)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남해군보호문화재 제1호로 아담하고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조선건국을 반대하다 결국 이성계에게 참형을 당한 최영 장군의 사당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건국의 뜻을 이룬 곳이 남해 금산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기분이 묘했다.

미조마을은 국도 19호선의 시작지점이다. 마을입구에 시점 표지판이 있다. 국도 19호선은 미조면에서 시작해 남해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빠져나간다. 이후 하동, 구례 등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한반도 중앙 내륙지역을 지나 강원도 홍천까지 이어진다. 전체길이 454.8㎞ 도로다. 또 미조마을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초전마을이 나온다. 초전마을은 국도 3호선의 시작점이다. 이 도로는 의미가 남다른 게 대한민국 남쪽바다 미조면에서 시작해 평안북도 초산군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도 양주시에서는 이를 평화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철원까지 길이가 555.2㎞에 이른다.

무민사

◇팔랑마을, 답하마을 그리고 설리마을

남항에 있는 수협 위판장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항구를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남해군수협 제빙냉동공장이 나온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팔랑마을이다. 대부분 양옥 주택이어서 마치 어느 한적한 도시에 있는 마을 같다. 깔끔하고 조금은 이국적인 분위기도 풍기는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일제 강점기에는 팔랑포(浦)라 불렸는데, 우리나라 잠수기어업(잠수장비를 착용하고 직접 물속에 들어가 수산생물을 잡는 일)의 전진기지였다고 한다.

팔랑마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고개를 살짝 넘으면 답하마을이다. 답하(畓下)란 '논 아래'란 뜻이다. 이름과 달리 마을에 논은 얼마 되지 않고 예로부터 주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고즈넉한 바다풍경이 좋은 탓에 지금은 펜션이 꽤 많이 들어서 있다. 1971년 마을 뒷산에서 주민이 20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마제석검(돌칼)을 발견했는데, 지금도 마을 소개에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답하마을 미역 말리기

답하마을에서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설리마을이다. 설리마을은 날씬한 백사장과 이를 에두른 가로수가 주는 풍경이 산뜻하다. '설리'에서 '설'은 눈 설(雪) 자를 쓰는데, 백사장이 눈부시게 희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한다. 남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분위기의 해변을 즐기고 싶다면 설리마을을 추천한다.

◇송정해수욕장과 송남마을, 천하마을

설리마을에서 미송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송정해수욕장이 나온다. 정식명칭이 '송정솔바람해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이 바람 덕분에 파도가 명품이다. 동해 해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남해에서 이만큼 파도가 힘찬 곳도 없을 것 같다. 1㎞ 긴 백사장을 두른 솔숲도 일품이다. 숲은 200년이 됐다고 하나 아름드리 나무는 없다. 하지만, 관리가 아주 잘 되어 분위기가 썩 괜찮다. 바람이 불면 소나무 아래 무성한 풀이 일제히 반대방향으로 드러눕는데 이 또한 푸른 바다 못지않게 시원한 풍경이다. 해수욕장이 있는 곳이 송남마을이다. 예전에는 '망넘이'로 불렸다고 한다. '망산 너머에 있는 곳'이란 뜻이다.

천하마을

송정솔바람해변 끝자락에서 국도 19호선을 만나 고개를 넘으면 천하마을이다. 남해 바래길 4코스와 5코스 시작점이다.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주변이 상주면과 미조면 경계다. 천하(川下), 즉 '내 아래'라고 불릴 만큼 예로부터 물이 맑고 풍부했다고 한다. 금산에서 뻗어 내린 물줄기가 이곳에서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 수원지가 미조면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마을 해변에 느티나무 숲이 있고 그 냇물이 바다로 들어가기 전 고여 있는데, 그곳의 운치가 더욱 기가 막히다. 한여름 한적한 기분으로 노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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