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자신의 모습을 남기려고 하는가!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찍거나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보이길 기대하면서 초상을 남길까?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62살 노년의 루벤스는 주름진 세월 흔적을 그렇게 그림으로 남겼고, 10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는 죽기 전에 웃고 있는 자신의 초상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26살에 붓을 잡아 그림에 몰두한 것이 고작 4년이지만 고흐는 자살하기 전 2년 동안 자신의 초상을 많이 남겼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화상이면서 동양 최고의 자화상이 된 공재 윤두서의 초상도 46세에 낙향해 자신의 초상을 완성하고 48세에 일기를 마쳤다.

정조는 생애 2번에 걸쳐서 자신을 그리게 했다. 임금의 초상은 몸과 얼굴을 따로 그리는데 천하의 김홍도도 몸만 2번을 그렸다. 당대의 평가는 이명기와 한종유를 얼굴을 그리는 주관화사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처음 그린 자신의 얼굴을 못마땅해했고, 역시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린 62세 서직수의 초상은 못마땅하다 못해 찬문에다 자신의 참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불만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에게는 뛰어난 도화서의 화원들이 있었다. 그의 어진을 거절했던 강세황이 죽던 해 정조는 39세였고, 제자인 김홍도는 47세, 신윤복은 34세, 그리고 정약용이 29세였다. 강세황은 71세의 자신을 그렸는데, 관모를 쓰고 편복을 입은 자신의 초상을 담았다. 제자인 김홍도의 초상에는 청수한 얼굴과 세속을 초월한 성품을 담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상에다 자찬을 남겼는데, 나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다고 했다. 내면의 실상을 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상은 전신사조에 중점을 두었기에 단순하게 인물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식까지 담아내야 했다.

녹색비가 내리는 집으로 낙향한 공재 윤두서가 바라본 자신의 얼굴과, 66세에 문신정시에 급제하여 관직을 얻은 강세황이 칠순에 이르러 돌아본 자신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자신을 향해서 던졌던 렘브란트의 웃음의 의미와 마지막 길의 자신을 기록으로 남겼던 고흐가 발견한 자신의 초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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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찍어대는지, 자신이 기대하는 자신의 초상은 무엇인지, 겉모양이 아닌 내면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자신을 기록하는 셀카봉이 인기상품이 되었다.

자화상(self-portrait)은 '발견하다'라는 의미가 담긴 라틴어 'protrahere' 앞에 '자신'을 뜻하는 'self'를 붙여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찍는 행위인 셀프카메라(self-camera)가 같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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