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정책 반영 목표 '주민 재산·건강 피해' 파악 집중
'진실 규명'공동체 회복 실마리…탈핵 교육·연대 강화

경남 밀양 할매·할배들은 지난 4·13 총선에서 녹색당에 힘을 보탰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녹색당 비례대표 2번으로 나섰다.

녹색당 정당투표율 결과는 0.76%(18만 2301표). 비례의원이 가능한 득표율 3%에 미치지 못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이들의 도전은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총선은 끝났지만 투쟁은 다시 시작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연극 용어인 '막'으로 나누면 지금부터 시작할 싸움이 제3막 되겠다. 제1막은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투쟁 등 현장 투쟁이 활발했던 시기다.

제2막은 일상 투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행정대집행 이후 현장에서 쫓겨난 밀양 할매·할배들은 송전 저지 투쟁에 집중했다. 미니팜 협동조합을 통한 농산물 판매와 전국 연대 활동, 사법처리 대응에도 주력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도 치렀다.

지난 9일 경남 밀양 산외면 긴늪사거리에서 밀양 할매, 할배들이 오랜만에 만났다. 이날 이들은 울산시청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건설 반대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최환석 기자

◇제도적 변화 물꼬 튼다 = 새롭게 시작할 투쟁 제3막 주제는 '긴 호흡'이다. 일상으로 들어와 장기적인 과제에 집중한다. 다양한 활동 가운데 첫째는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진실'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그동안의 활동이 전기가 모자란다는 정부와 한국전력의 선동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고 핵발전소가 발전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송전선로 주변 주민 생존권을 빼앗는다는 사실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했지만 실제 제도적 변화로 연결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제3막에서는 송전탑과 관련한 문제를 입법·정책 과제로 이끌어 갈 계획이다. 밀양을 포함한 송전선로 인근 지역주민 재산이나 건강 피해 문제를 파악하는 실사를 20대 국회와 함께하고자 한다.

이 사무국장은 "실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 송주법(송ㆍ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반영되고, 앞으로 신규 발전소 송전선로를 만들 때 지역주민 피해가 없도록 사업 허가 과정 등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최근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함께 밀양 주민 건강권 조사를 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재산권 조사는 20대 국회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건강권 피해와 관련해서는 전자파에 국한했던 기존 접근과 달리할 계획이다. 이 사무국장은 "건강권 피해 범위나 내용은 여러 쟁점이 있지만 소음 문제도 심각하다"며 "아주 굵은 36가닥의 송전선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발생하는 소리가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송전탑이 헤쳐놓은 경관이 주는 스트레스, 재산권 거래가 막힌 데서 오는 스트레스, 공동체 파괴 스트레스 등 여러 피해 사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새로운 시도여서 사전 조사도 필요하고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른 지역 유사 사례에 기준을 제시할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체 파괴 해법은 '진실' = 또 다른 과제는 파괴된 밀양 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이다.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골이 깊게 팼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무국장은 "한전이 법에도 없는 마을 보상금을 임의로 주는 과정에서 기약 없는 투쟁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분들과 끝까지 투쟁하는 분들이 서로 싸우게 됐다"며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 있고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회복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역주민 간 화해를 이끌어내는 시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 규명이다. 주민이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문제임에도 싸울 수밖에 없게 한 주체가 누구인지 등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곧 화해 실마리가 된다는 계산이다.

이 사무국장은 "마을 공동체 화해와 치유를 목적으로 진실 규명 조사를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며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도록 요구하겠지만 여의치 않을 때 자체적으로 지금까지 밝힌 내용에 살을 보태 정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어 "송주법에 따른 보상 이외에 특수사업 보상규정이라는 한전 자체 내규로 주는 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문제가 발생한다"며 "음성적으로 돈이 오가는 문제는 사법적 처리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로 맞잡은 손 = 안으로는 주민과 연대자들이 일상적으로 만나서 화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함께 공부하고 농사일도 돕는 활동을 이어간다. 지금도 단장면 용해마을에서는 매주 금요일 바느질 공방, 부북면 위양마을에서는 수요일마다 텃밭 가꾸기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1일, 2박 3일 코스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며 "탈핵·탈송전탑, 에너지 , 밀양 송전탑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어르신들이 겪은 경험을 나누고 농사일도 돕는 활동을 패키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회를 넘은 밀양 송전탑 반대 촛불 문화제도 이어간다. 4개 면에 흩어진 주민들이 단합하고 소식을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한다. 밀양 밖으로 나가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하는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을 계획이다. 일상으로 돌아와 안으로, 밖으로 바쁘게 움직일 밀양 할매·할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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