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거창국제연극제 예산지원 중단
진흥회 2명 운영위원 요구에 운영위-군 갈등, 예산 지원 중단 결정
모집공고 취소 이미지 실추…해외극단 국제소송 우려까지

파행을 겪던 거창국제연극제가 끝내 거창군의 손을 떠났다.

지난 4일 거창군은 거창국제연극제와 관련해 주민설명회를 열었고 예산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거창군이 오는 7월 29일부터 수승대 야외무대에서 열기로 한 거창국제연극제를 위해 편성한 8억 2000만 원(국비 3억 원, 도비 2억 원, 군비 3억 2000만 원)의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제28회 거창국제연극제는 순수 민간 주도로 열리게 됐다.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해 개최 장소, 홍보 역량 등 여러 장애요인이 대두될 우려가 크다.

거창국제연극제의 분열 과정, 예산지원 중단과 함께 초래될 문제를 짚어본다.

지난 4일 거창군은 군청 대회의실에서 거창국제연극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거창군

◇진흥회-집행위 갈등 = 거창국제연극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사업비 집행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감사원으로부터 예산집행 투명성 문제를 지적받아 지난 2001년부터는 연극제 주체가 예산 담당인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와 행사 담당인 집행위원회로 분리되기도 했다. 행사 개최를 놓고 두 단체 간 갈등이 계속됐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대학연극제를 두 단체가 비슷한 시기에 각각 여는 바람에 고소·고발과 임원 해임 등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15만 명이 넘었던 관람객도 지난해 7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와 함께 거창국제연극제는 지난해 '공연예술축제에 맞는 예술감독, 프로그래머 등 전문인력 구성 운영이 필요하다'는 문화체육관광부 평가를 받았다. 올해 거창군은 이를 개선·보완한다는 조건 속에 국비 3억 원을 지원받은 뒤 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운영위는 손정우(경기대 연기학과 교수) 한국연극연출가협회장이 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극단 루터21 대표 박재완 예술감독, 문종근 경남연극협회 지회장이 프로그래머로 이름을 올렸고 한국연극연출가협회장을 역임한 김성노 위원, 상명대 교수 김창화 위원, 평론가협회 부회장 심재민 씨가 위원으로 각각 위촉됐다. 외부전문가 6명과 함께 거창군 담당자 2명이 운영위원에 포함됐다.

거창군은 지난 3월 31일 '제28회 거창국제연극제 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 계획'에 따라 운영위를 구성했고, 거창군의 최근 결정 이전 두 차례 운영위원회 회의를 열며 3개월여 남은 거창국제연극제 막바지 준비를 했다.

◇운영위-거창군 갈등 = 거창국제연극제 준비로 한창이던 지난 4월, 운영위원회는 본격 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진흥회는 거창군에 "2명의 지역 출신 연극인을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4·13 총선과 함께 치른 재선거에서 양동인 군수가 당선된 후 군은 운영위와 진흥회의 이견을 조율하려 했으나 갈등이 고조됐다.

2차 운영위원회 회의까지 마치고 사실상 국내외 연극단과 계약만을 남겨뒀지만 거창국제연극제 준비는 잠정적 중단에 이르렀다.

운영위는 "군은 지난달 19일 두 개의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려서는 안된다면서 운영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고, 조직이 재편되기 전까지는 운영위원회 활동 중 예산 편성, 홈페이지 운영, 모집공고 등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새로운 운영위를 구성해야 된다는 거창군의 입장 표명에 운영위는 지난 달 24일 양동인 군수와 긴급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양 군수는 "진흥회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우려가 있으니 운영위원을 1~2명 추가로 받아들여 연극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자. 현실적인 장애를 극복하자"는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6일, 군수가 추천하는 운영위원을 수용하지 않으면 올해 거창국제연극제를 개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창군이 운영위에 전한 데 이어 운영위와 별도로 연극제를 준비한 진흥회와 타협해 하나의 연극제를 개최하라고 하면서 갈등은 증폭됐다.

운영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양동인 군수는 운영위원회 기능 및 역할을 축소해 예술전문인을 결국 행정 하수인으로 부리려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경남도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손정우 운영위원장은 "주민설명회가 즉흥적으로 열린다는 것은 성급한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공공재원이 투입되는 행사인데 예산반납을 한다는 것은 차후 몇 년간 지원을 못받는다는 이야기인데, 이 축제를 죽이겠다는 것과 다를 것 없다. 올해 단순 반납이 아닌 축제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거창군이 낸 자료를 보면 연극인들끼리 밥그릇 싸움으로 번진 것 같이 변질된 내용이 있는데 사실과 다른 문제"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거창군 측은 "군의회에서 '거창군이 직접 시행'하는 조건으로 예산을 승인했다. 조건부 승인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예산 집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회 의견을 받았다"며 "군 직접시행이라는 의회 조건 이행을 존중하며, 2개의 연극제가 개최된다면 지역 이미지가 크게 훼손돼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점, 진흥회의 양보없이 군 직접 시행 시 상표권 분쟁 소지가 있다는 점, 연극제 명칭을 변경 사용할 경우 국·도비를 지원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부득이 거창군에서는 따로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지 타격 등 우려 = 군이 거창국제연극제 개최를 포기함에 따라 올해도 주관단체는 진흥회가 됐다.

운영위원회는 이번 결정으로 많은 피해를 보게 됐다. 일부 운영위원은 국내외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한 연극인은 "이번 사태로 한 운영위원은 해외에서 인정을 받기 어려워 질 것 같다. 해외 극단 관련 협상을 도맡아 왔던 터라 이미지 실추가 크게 우려된다"고 전했다.

더불어 운영위가 공모를 받았던 극단 중 일부 해외 극단은 법적 소송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손 위원장은 "해외 극단은 국내 극단과 달리 분업화가 잘 돼 있고, 이번에 참가하려던 극단 중 일부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극단이었던 탓에 국제소송 문제로 번지게 될지 모른다. 거창국제연극제 이미지 실추도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연극제는 어떻게 하든 살려야 한다는 것이 연극계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진흥회에서 기존 운영위에 공모를 신청했던 극단들을 받아들인다면 일부 문제가 해소될 순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연극계 관계자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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