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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주방 떠나 농촌으로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5) 함안 군북 알리바바 농장 박재민·박서경 부부

하청일 기자 haha@idomin.com 2016년 05월 09일 월요일

서울 한 대기업 회장 의전팀에서 VIP 음식을 담당했던 젊은 요리사들.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것 없었던 이들은 서울에서의 삶보다 시골생활을 꿈꾸었고, 운명처럼 두 마음이 맞아 결혼과 함께 그 꿈을 실천에 옮겼다.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알리바바 농장을 운영하며 다육식물과 깨, 콩, 감, 벼농사를 짓는 박재민(36)·박서경(36) 부부다.

◇귀농 꿈꿨던 청춘남녀, 결혼과 함께 시골로 = "막연히 시골에서의 삶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게 꿈이라고 했더니 그 꿈을 이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생활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만 저하고는 맞지 않았어요. 꽉 짜인 틀에서 움직이는 게 너무 각박하다 여겼죠. 이런 곳에서 애 낳아 잘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직장 동료로 호감을 느꼈는데 남편도 시골을 생각했더라고요."

보통 도시인들도 생각하기 쉽지 않은 농촌생활을 젊은 부부가 꿈꾼 이유를 물었더니 아내 서경 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요리일을 하면서 남들 생활처럼 하는 게 올바른 삶일까 고민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직장생활 하면서 월급 받아 애들 키우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며, 또 퇴출당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동료와 경쟁해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들이었죠. 그런데 이런 고민을 아내도 했던 것입니다. 만약 아내가 쇼핑에 명품 좋아하고, 우아하게 외식이나 즐기는 사람이었더라면 이곳에 올 수 없었겠죠. 아니 처음부터 저와 인연이 안 됐을 겁니다." 남편 재민 씨도 똑같은 생각을 했단다. 그러고 보면 귀농은 부부의 운명이었던 셈이다.

서울에서 농촌생활을 동경한 요리사 박재민·박서경 부부는 결혼과 함께 경남 함안으로 귀농했다. 농장에서 만난 박재민·박서경 부부 가족.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컴퓨터에서 요리로, 다시 농사로 '화려한 변신' = 재민 씨는 대학에서 컴퓨터를 공부했다. 그런데 점점 컴퓨터는 자신에게 밝은 미래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일본요리였다.

"공익근무를 했는데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목적을 가진 공부는 아니었지만 유용하게 쓰였죠. 일본 유학을 가 어학원에서 1년 공부하고 요리전문학교에서 2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재민 씨는 일본에서 정착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외국인이 일식요리사로 일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 생겼죠. 요리 일은 취업비자가 발급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2008년 귀국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재민 씨는 서울에서 첫 직장을 잡았다. 물론 요리사였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회장 의전팀 요리사를 구하는데 일본요리가 전문이었다. 경쟁력이 있던 재민 씨는 기회를 잡았다. 의전팀에서 일하던 재민 씨는 한식팀장이었던 서경 씨를 만났다.

"직장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었지만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죠. 그 해답이 농촌이었고, 직장 동료이자 상사인 서경 씨를 만나 아내의 꿈을 이뤄주겠다며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수상한 부부, 마을 주민들의 감시대상 = 재민 씨 시골생활을 부모는 이해했을까? 반대가 심했을 것 같았는데 대답은 뜻밖이었다.

"부모님께 결혼하면 시골에 가 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걱정은 좀 됐죠. 어느 부모가 30대 초반 젊은 부부의 시골생활을 찬성했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님 대답은 달랐습니다. 당신들은 기꺼이 우릴 응원했습니다."

부부는 부모님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정보지를 통해 함안 군북에 아이들 농사체험이 가능한 집과 밭이 나온 것을 보고 바로 계약했다. 2012년 6월이었다.

다육식물을 돌보고 있는 박서경 씨. /김구연 기자

"귀농인 대부분은 어릴 적 살던 곳이나 연고가 있는 곳으로 귀농귀촌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린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들어오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 관심거리가 됐죠. 처음 말이 많았었나 봅니다. 왜 이런 강촌으로 왔는지, 무슨 큰일을 저지르고 온 게 아닌지 궁금했던 거겠죠. 서울서 직장생활 하다 시골이 좋아 무작정 들어왔다 해도 아무도 안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1년 정도 지켜봤을까 '수상한 부부'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당신들의 묵정밭도 내어 주고 온갖 도움을 주더라고요."

서경 씨도 이야기를 곁들인다. "갓난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가 굶어 죽는 게 아닌지 할머니들이 종종 집을 찾아왔습니다. 얘들이 뭘 할까, 농사지을 줄도 모르는데 뭘 심어놨나, 잘 심었나 못 심었나 매일 보고 다녔던 거죠. 그러면서 괜찮으냐, 궁금한 게 있으며 배우러 와라, 지금 뭐 심을 철인데 씨앗 줄 테니 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동네에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니네 어제 뭘 했다면서'라고 할 정도로 우리 가족 일이 동네 얘깃거리였습니다."

◇도시보다 더 바쁜 농촌, 그러나 마음은 넉넉 = 부부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점점 마을 일을 도맡는 일꾼으로 성장했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다육식물을 중국으로 수출해 이젠 부부의 최대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동네 사람들을 대신해 짓는 감나무가 350여 그루다. 그뿐만이 아니다. 벼농사 1000평에 올해는 참깨 1000평, 콩 1500평도 심을 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으로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서경 씨는 "이렇게 바쁠 줄은 몰랐습니다. 도시 생활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여기서는 시간을 분 단위로 움직입니다. 도시 친구들이 밤엔 뭐하느냐고 그러는데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잠자기 전까지 다육식물 인터넷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밤낮이 없습니다. 더구나 농사를 뭘 지을지, 어떻게 지을지 모르니까 공부도 해야 하죠."

그렇지만 마음은 그렇게 넉넉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서경 씨는 "하루는 일에 지친 남편에게 물었죠. 혹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으냐고요. 그랬더니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하더군요. 사실 이 생각은 내가 해온 것이기도 했고요."

서경 씨는 "직장생활처럼 돈이 필요할 때 일정하게 나오는 게 아니니 그게 불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못살겠다' 이런 것은 아니죠. 주부로, 또 아내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부딪치다 보면 탈출구가 생기고 하나씩 실마리가 풀리더라고요."

재민 씨도 "여기서는 남들에게 내 겉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내 차종, 내 집 평수, 직장에서 내 직위, 내가 갖고 다니는 것 이런 것들이 아무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는 누더기를 걸치고, 세수를 안 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 없습니다. 흙이 묻으면 묻은 대로,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게 농촌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참 매력있는 부부다. 재민·서경 씨의 엉뚱하지만 확신에 찬 농촌생활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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