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시장에서 배운 도장 전쟁·타향살이 고초에도 60년 함께해온 '동반자'로
손도장·장옥 지킴이 자처 "몸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100년도 더 된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줄지어 있는 창원시 진해구 중평동 장옥거리 건물 한 곳에는 '황해당인판사'라는 간판이 걸린 가게가 있다.

빛바랜 간판만큼 오랜 세월 손도장을 만들어온 정기원(82) 선생이 가게 주인이다.

정 선생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열두 살 때 아버지 권유로 장날이면 시장에 와서 도장을 파는 어른에게서 인장 기술을 배웠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정 선생은 그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1958년 10월 15일일 거요. 당시엔 바로 앞이 진해시청이어서 대서소가 몇 군데 있었어. 이 건물 모퉁이 공간에 도장·인쇄 가게를 처음 차렸어요."

정기원 선생이 자신이 판 도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해중 기자

그렇게 60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도장을 파며 살아왔다.

정 선생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가게 이름이 '황해당'인 이유다.

"우리 고향 사람 지나가다가 만나면 얼마나 좋겠나 해서 황해당이라고 이름 붙였지."

정 선생은 어떻게 고향과는 한참 떨어진 진해에서 터를 닦게 됐을까.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모님과 헤어져 혈혈단신으로 옹진반도에서 백령도를 거쳐 대청도로 피란을 했죠. 전쟁 일어난 지 1년 지난 뒤 해병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진해에 도착했어요."

정 선생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전쟁 상황 탓에 군번 없는 해병으로 1년 2개월여 복무했고, 다시 시험을 쳐서 해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도 인장 기술은 유용했다. 서류에 필요한 직인과 간부·장병의 목소판(목도장·막도장)을 만들었다. 특히 정 선생은 '군번도장'(가운데 이름을 새기고 그 주위를 소속 부대와 군번으로 둘러싼 형태의 도장)은 자신이 가장 먼저 만들었을 거라며 자부했다. "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처음 새겼으니까 내가 최초일 거요. 허허."

▲ 황해당인판사가 있는 장옥 건물. /강해중 기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군 생활을 이어간 정 선생은 상관의 부정에 항명하며 1958년 전역했고, 그해 황해당인판사를 차렸다. 이때부터 황해당의 역사가 시작됐다.

정 선생은 한창때는 하루에 목도장 100~150개를 팠다. 2~3분에 한 개꼴로 뚝딱 만들어낼 정도였다고.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컴퓨터 조각 기술이 도입되면서 점차 손도장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진해 시내에 10여 군데 있었던 손도장집들은 흐름에 편승해 컴퓨터 조각 기술을 도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 이후 정 선생 말에 따르면 "도장시대가 저물고 사인시대가 도래"하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가게들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정 선생은 꿋꿋이 자리를, 생업을 지켰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도장도 예술입니다. 인장 공예라고 하지요. 예부터 도장은 작품이었어요. 낙관은 작품에 화룡점정하는 겁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낙관만 수십 종류 있었다고 해요.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예술 작품을 손이 아닌 기계로 조각하는 게 어딘가 이상하지 않소."

요즘 정 선생은 나이와 건강 탓에 한 달에 도장 두세 개 정도만 만든다. 새벽에 일어나 사위가 조용할 때 20~30분 정도 작업한다. 그래서 도장 하나를 완성하려면 일주일 정도 걸린다. 그나마도 알음알음 의뢰해오는 주문이 밀려 두세 달째 완성하지 못한 것들도 있단다.

평생 예술을 한다는 자긍심으로 이어온 이 일도 정 선생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길 처지다.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일이오. 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어요. 굳이 후계를 이을 생각도 없고. 다만 내 몸이 움직일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이오."

대화를 마치고 작업실로 향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랐다. 긴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늘어서 있다. 한 방에 들어서자 오래된 책상과 작업용 확대경, 그리고 손때 묻은 조각칼이 눈에 들어왔다. 작업용 책상 왼편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켜져 있다. 화면에는 유네스코에 장옥거리 건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신청 문서가 띄워져 있다. 창원시에서 보낸 서류를 검토하고 보완하는 중이란다.

"이 집이 문화재요. 오래되다 보니 비도 새고 창틀도 비틀어졌어요. 역사 깊은 이곳을 보존하고 싶어요."

근대문화유산인 장옥 건물과 정 선생의 손도장, 우리 주위에는 지켜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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