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스펙이다.'

이 말은 군대에 도서를 보급하고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독서 코칭 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랑의 책 나누기 운동본부의 구호이다. 지난 4월말, 2016년 독서코칭 워크숍에 다녀왔다.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전국 200여 군부대에서 독서코칭이 시작되면 장병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책에 대한 이해를 기르게 될 것이다.

아들 군대 보낸 엄마로 뭔가 해야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군대 독서 운동에 동참했고 1년이 지났다. 아들은 제대했지만 나는 활동 반경을 더 넓혀 육군부대에 이어 올해는 해군부대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날 워크숍은 군부대 관계자와 독서코칭 강사들이 만나서 앞으로의 운영방안을 공부하고 또 군대 내 독서코칭 운동의 특성을 공부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사람의 힘을 실감했다. 1999년 결성된 이 모임이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이만큼 자란 데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알지 못할 고충이 함께했으리라. 그러나 이것이 어찌 한 사람만의 힘이었겠는가. '책'이라는 큰 명분과 가치가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만들어냈고 동참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리라.

군부대에 처음 독서코칭 강의를 갔을 때 도서관이 잘 정비된 것을 보고 내심 놀랐었다. 군대와 책,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대상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독서지도를 하는 내게는 반갑고 고마웠다. 잘 갖추어진 진중문고와 도서관 순회문고 운영으로 병사들이 많은 책을 손쉽게 접하고 읽으며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독서 여건이 모든 부대의 공통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서해의 NLL(북방한계선) 경계지역, 비무장 지대 군사 경계선, 어디에나 우리 젊은 아들들이 있다. 어떤 경우는 책이라는 문화를 접하기 매우 열악한 환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책과 벗할 기회가 점점 확대되어 가는 일은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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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많은 아이들이 스펙 5종, 7종 세트를 쌓느라 바쁘단다.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낸 씁쓸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런 시대에 '군대가 스펙이다'라는 이 단체의 구호는 유쾌하고 멋지다. 이 구호를 보며 새삼 초등학교 때 배웠던 국민의 4대 의무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갓 제대해 향토예비군이 된 스물세 살의 아들을 일찍 군대 보내길 잘했다고 스스로 대견한 마음을 가져본다.

내 아들은 제대했지만 군에는 수많은 우리 아이들이 있지 않나. 그 아들, 딸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함께 삶을 고민하다 보면 그 아이들이 헤쳐가야 할, 풍랑 이는 젊은 날의 바다에 서 작은 등대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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