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가정간호 일 시작 창원지역 환자 30명 돌봐…보호자들의 '보호자'자처 아픔 공유하며 치유 돕기도 "배려하고 나누며 살고파"

봄볕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날, 한적한 주택가에 차 한 대가 멈춘다. 잠시 후 어느 집 마당에 한 여성이 들어서자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여성은 마중 나온 집주인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곧장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커다란 창이 난 방으로 향한다. 몸이 굳은 또 다른 여성이 침대에 누워있다. 코와 아랫배 쪽에는 긴 튜브가 달렸고 몸 곳곳에는 하얀 밴드가 붙여져 있다.

침대 쪽을 향해 잘 있었느냐고 안부를 묻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익숙한 침묵인 듯 여성은 맥박과 혈압 등을 묵묵히 체크한 후 오랜 짓눌림으로 생긴 욕창을 소독한다.

30여 분이 지났을까. 마지막 욕창에 밴드를 붙이고 겨우 허리를 편 여성 목에 삼성창원병원 마크가 새겨진 신분증이 걸려 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고 환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수고했다고 말하는 그는 가정전문간호사다.

환자 맥박을 측정하고 있는 채연미 씨. /문정민 기자

가정전문간호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퇴원 후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 처방에 따라 가정을 직접 방문해 필요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지역민을 위한 의료 서비스 차원에서 가정간호 간호사를 제법 뒀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요."

1997년 가정간호 일을 시작한 채연미(49·창원시) 씨는 창원지역 환자 30여 명을 돌보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격주로 오전 8시 30분에서 낮 12시 30분까지 하루 평균 4~5곳을 방문한다. 환자 질환 정도에 따라 매일 혹은 1~2주에 한 번씩 들르기도 한다. 오후에는 병원으로 복귀해 다른 가정간호사 1명과 교대한다. 퇴근 전까지 환자들 건강상태 등을 기록, 보고하고 필요한 약을 처방받는다.

말기 암 환자는 주로 영양제 수액을 투여하고, 중증질환자는 호흡을 돕는 기관절개관, 음식을 제공하는 비위관(콧줄), 소변을 배출시키는 도뇨관(소변줄) 등 몸에 달고 있는 특수튜브를 교환한다. 수술 환자는 상처나 흉터를 집중치료한다. 3살 아이부터 90세 어르신까지 연령층 폭이 넓다.

대부분 하루 이틀 아픈 환자가 아니라 맺은 연이 길다.

2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집에서 치료받고 있는 남성은 연미 씨의 가장 오래된 환자이기도 하다. 함께해온 세월만큼 보호자인 가족과도 편하게 지낸다. 도뇨관을 교환하기 위해 집에 들르면 훌쩍 커버린 환자 조카가 '간호사 이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따른다. 싹싹한 연미 씨와 달리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성은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굳게 닫힌 입에는 연미 씨에게 전하지 못할 말들이 머물 뿐이다. 그런 그가 병원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칭찬합시다' 코너에 연미 씨를 위해 힘겹게 올린 글이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돌봐줘서 고맙다'고.

"감동이었죠.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쑥스럽기도 했고요.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환자 분이 올린 글을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어 놨어요."

아픈 사람한테는 무조건 잘해줘야 한다는 연미 씨 철학에는 보호자도 포함된다. 몸이 불편한 환자는 보호자가 챙기지만 정작 본인 몸과 마음은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다 갑작스레 쓰러지는 일도 있다. 연미 씨는 그런 보호자들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간밤에 잠은 잘 잤는지, 식사는 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습관적으로 묻는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늘 방실방실 웃는 연미 씨도 힘들 때가 있다. 보호자가 짜증을 내거나 한참을 하소연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럴 때마다 연미 씨는 그저 조용히 들어준다. 그리고 나지막이 다독인다. 그도 그럴 것이 연미 씨는 2년 전에 남편을 갑작스레 잃었다. 연미 씨가 건네는 위로는 아파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심인 것이다.

삶과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연미 씨는 문득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부장간호사 등 회사 내 간부급 승진도 허망한 죽음 앞에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살았노라 말할 수 있는 세 가지는 꼭 이루고 싶어요. 첫 번째는 이미 이뤘어요. 사랑하는 아이를 낳은 거예요. 두 번째는 박사 학위 받는 건데 지금 논문 통과 앞두고 있어요. 세 번째는… 앞으로 찾으려고요."

틈만 나면 독거노인을 찾아 무료진료 봉사한다는 연미 씨.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어르신이 연미 씨만큼은 알아보는 듯 두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하면 마음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다고. 세 번째 꿈에 대해 말을 아끼던 연미 씨는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무엇임을 조심스레 내비친다. 반평생 환자와 가족을 배려하며 살아온 연미 씨. 그의 마지막 소망마저 온전히 간호사로서 삶과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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