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내 맘대로 여행] (79) 고창 청보리밭 축제

뿌연 세상이 원망스럽다. 잿빛으로 흐려진 세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싱그러운 초록을 보러 갈 참이다. 오감을 초록에 집중할 테다.

남해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탔다. 고창 나들목을 지나 우회전한 후 15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고창 청보리밭 축제' 펼침막을 만난다. 길이 나뉠 때마다 나타나는 친절한 안내판은 우리를 축제 현장으로 이끈다.

전북 고창은 옛날부터 보리를 많이 재배했다. 고창의 옛 지명인 모량부리현의 '모'자는 보리를 뜻하며 '양'자는 태양을 뜻한다. 고창 청보리밭(학원농장에서 경영)은 아름다운 농장풍경을 인정받았다. 이에 전국 최초로 청보리밭과 그 주변이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됐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절정에 달했다. 내달 8일까지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 일원에서는 초록 물결과 노란 물결이 넘실대는 축제가 계속된다. 청보리밭으로 가는 길의 시작은 유채꽃이 먼저다. 풍차와 원두막이 조화를 이룬 유채꽃밭은 한 폭의 그림이다. 유채꽃밭에 풍덩 빠져 걷다 보면 청보리밭을 만난다.

종과 상관없이 젊은 보리를 모두 청보리라 한단다. 싱그러움을 뽐내는 봄과 청보리는 그래서 닮았다. 탄탄한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청보리밭을 걷다 만나는 테마 공간도 흥미롭다. 도깨비 숲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도깨비들이 동물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까지 괴롭혀 참다못한 주민들이 도깨비를 대숲에 몰아넣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절을 짓고 사천왕상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도깨비 숲 맞은편에 있는 호랑이왕대밭은 도깨비의 심술궂은 장난을 피해 왕대밭으로 호랑이가 숨어들어 온 곳이라고 한다. 대밭 입구에 세워진 호랑이 모형의 표정은 대숲과 어울려 위엄이 가득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온 뽕나무는 주변과 어울려 사진 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늑대소년>과 <만남의 광장> 등도 이곳에서 찍었단다. 이번 축제에선 이 공간을 '도깨비 이야기길&영화드라마길'로 조성해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보탰다.

보리밭 산책에 출출해진 배는 보리밥으로 채워도 좋고 추억의 보리 떡으로 채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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