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나마을 김진형 이장

"최치원 선생이 즐겨 찾던 '임경대'에 이어 내 고향 원동면 '가야진 용신제' 현판도 꼭 이 두 손으로 서각작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나마을 김진형(65) 이장은 이장보다는 서각가로 통한다.

29년 전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부산 수영구청 앞에 있던 서예학원 원장과 친분으로 우연히 찾은 서예학원에서 본 서각 솜씨에 반해 취미로 서각을 익혔다.

시내버스 기사 일을 하느라 학원에 갈 시간조차 없었던 김 이장은 어깨너머로 서각가들이 칼과 끌로 나무를 긁어 내는 작업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수십 번, 수백 번 흉내를 냈다.

시내버스 운행을 마치고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 집으로 돌아온 김 이장은 한 번 서각도를 들면 밤을 새워 나무를 파고 또 팠다.

13년 전 서각을 위해 하루 3∼4갑을 피우던 담배와 술도 끊고 서각에만 몰입했다. 김 이장은 서각작품 도록을 모아가며 열심히 독학으로 서각을 익혔다.

주경야독으로 익힌 서각 실력은 11년 만인 지난 1998년 한양미협 주최 서각대회에서 특선과 금상을 잇달아 수상하면서 숨겨진 서각의 재능을 발견했다.

2000년 한국미술대상전 서각부문 입선과 2004년 한국종합문화예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시내버스 기사 겸 서각가로 변신한 김 이장은 자신의 작품을 어려운 이웃돕기에 기증하면서 법무부로부터 감사장을 받는 등 서각을 통해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했다.

양산시 원동면 지나마을에서 태어난 김 이장은 화제초등학교와 물금읍 동아중학교를 나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찍이 산업현장에 뛰어들었다.

어린 나이에 운전면허를 딴 김 이장은 1974년 부산의 한 철공소와 전기업체, 태창기업 등에서 트럭을 몰면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1979년부터 부산 일광버스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면서 대중교통 일꾼으로 변신한 김 이장은 부산에서 6년간 일을 한 뒤 1990년부터 양산 시내버스업체인 세원으로 옮겨와 양산∼구포 노선에 이어 언양∼부산(명륜동) 노선 시내버스를 운행했다.

21년간 세원에서 근속한 뒤 2011년 퇴직하고 1년간 부산에서 개인택시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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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각으로 사회봉사와 재능기부에 앞장서고 있는 김진형 이장. /김중걸 기자

하지만 김 이장은 택시 운행이 적성에 맞지 않아 2014년 고향인 지나마을로 아내와 함께 귀향했다.

10년 전부터 지나마을 고향집과 부산 동래구 수안동 집을 오가며 텃밭을 가꾸곤 하다 아예 귀향과 귀농을 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완전히 정착한 김 이장은 1년 만에 주민들의 요청으로 지난해 1월부터 지나마을 이장직을 맡게 됐다. 89가구 169명이 사는 지나마을은 여느 농촌마을처럼 노인이 다수로 김 이장은 노인회 총무까지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이장은 노인 돌보기에도 헌신적이다.

가끔 노인들을 자신의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에 태워 목욕탕과 시장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매월 한 차례 홀몸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도 하며 그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 주기도 한다.

마을에서의 일상적인 봉사 외에도 김 이장은 마을표지판은 물론 천하의 절경을 자랑하는 양산시 원동면 임경대 양각 현판과 마을회관, 멀리 공주의 재실, 교회, 청도의 절 등 자신의 솜씨를 알고 도움을 요청하는 곳에는 서각 재능봉사를 하고 있다.

지인들의 요청에 따라 '부귀일상', '백사여의' '초재진보(招財進寶)' 등 서각(죽각)작품을 만들어 선물하고 있다.

김 이장의 장기는 대나무에 글을 새기는 죽각이 전문이다.

김 이장은 "죽각은 집중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깨어져 버려 힘이 들지만 대나무는 곧음의 상징이어서 참 좋다"며 "그러나 작품을 하면 할수록 겁이 난다"며 겸손해했다.

김 이장은 힘이 들지만 지역의 문화유산인 가야진 용신제 서각 현판 만들기에 마음이 부풀어 있다.

서예대가로부터 현판 글씨가 오는 대로 곧바로 서각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김 이장은 "취미로 배운 서각 솜씨가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고 마을 표지판으로 만들어져 마을 입구에 내걸 수 있어 보람이 된다"며 "앞으로도 서각을 통해 더욱 보람된 생활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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