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면 새누리 비례대표 몰표 사건 경위 정리…황당한 진주시선관위 반응

"내가 자칭 선거박사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제대로 봐 주고 제대로 평가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진주시선관위 박용백 사무국장 말처럼 '진주시 수곡면 새누리당 비례대표 몰표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건 경위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개표상황실에는 CCTV가 없었기 때문에 증언과 자료, 진주시선관위 해명을 듣고 재구성 한 것이다.

수곡·명석면 표가 왜 뒤섞였나

2016년 4월 8, 9일 진주시 수곡면사무소 별관 회의실에서 관내사전투표가 진행됐다. 농사일 때문에 13일 투표가 어려운 사람, 할 일이 많은 대학생 등 수곡면 주민 가운데 총 177명이 사전투표에 임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새누리당을 많이 찍었지만 그래도 1/3이상은 야당을 찍었다. 수곡면에는 투표할 게 하나 더 있었다. 진주시 다 선거구 시의원 재보궐 선거도 함께 투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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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가 이뤄진 수곡면사무소 별관 회의실./임종금 기자

2016년 4월 13일 개표 당일 저녁 7시 24분경 수곡면 관내사전투표함 2개에서 표가 쏟아져 분류기로 들어갔다. 곧이어 거의 비슷한 시각 개봉한 명석면 관내사전투표함 2개에서도 표가 쏟아져 분류기로 들어갔다.

당시 분류기를 조작하고 있던 사람은 대학생 선거사무원인 ㅇ씨였다. 수곡면과 명석면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다 합쳐봐야 529매 불과했다. ㅇ씨는 이것을 한 지역 비례대표 투표용지로 판단했다. '수곡면 비례대표 몰표 미스테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합쳐진 양 지역 529표가 분류기를 지나 곧 정당별로 모였고 새누리당 표 316매는 200매 짜리 한 묶음과 작은 묶음으로 분류돼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뒤 ㅇ씨 보다 직위가 높은 선거사무원이 무슨 지시를 내렸다. ㅇ씨는 이 지시를 수곡면 표 177표를 달라는 것으로 인지하고, 어찌된 일인지 새누리당 200매 묶음에서 23매를 빼고 177매를 건넸다. ㅇ씨에게서 투표지를 건네 받은 사람은 그대로 새누리당 177표를 수곡면 득표로 집계했다.

ㅇ씨도 ㅇ씨에게 표를 건네 받은 사람도 투표지 하단에 있는 지역별 투표관리관 도장은 확인하지 않았다. 글씨는 비록 작지만 그래도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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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지 하단에 있는 수곡면 투표관리관 직인. 이것을 선관위 직원이 확인했더라면 이런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임종금 기자

당시 개표를 보고 있던 노동당 측 개표참관인인 심인경 씨는 투표지 봉인 직전 새누리당 비례대표 177표 몰표로 기록된 수곡면 개표상황표를 발견했다. 이 때가 저녁 7시 50분으로 보인다. 심 씨는 "어떻게 비례대표가 한 표도 빠짐없이 몰표가 나올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진주시선관위는 "교차투표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냐"고 해명했다. 심 씨는 재검표를 요구했다. 표들이 다시 꺼내졌고, 177표를 살펴봤다. 틀림없이 새누리당 표였다. 이 과정에서도 투표지 하단 투표감독관 도장에 주목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 씨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지만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다행히 이 작은 소동은 <경남도민일보> 기사로 보도돼 나중에 취재할 수 있는 기본자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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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시 수곡면 비례대표 개표상황표. 새누리당이 177표 몰표를 받은 것으로 돼 있다./심인경 씨 제공

선관위 직원이 '결과'를 강조한 까닭

문제는 또 있었다. 사전투표 당시 투표용지는 177표를 교부했는데, 지역구 투표지 7장이 누락된 것이다. 수곡면 주민 7명이 비례대표만 투표하고 지역구 투표지는 버렸는지, 7명이 실수로 재보궐 시의원 투표함에 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보통 1000표 중에 1~2표 정도 일어나는 누락표가 고작 177표 투표한 수곡면에서 7표나 발생한 것이다.

진주 갑 선거에서 이처럼 사고가 난 표가 수곡면 7표를 포함해 총 34표였다. 개표 중 투표함에 잘못 들어가 있거나 이상한 것은 모두 본부석 앞 큰 박스에 모인다. 사고가 난 표 34표를 진주시선관위는 그 박스에서 회수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고가 난 경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고표 34표를 선관위는 찾았다. 고로 수곡면 7표도 문제가 없는 것이 됐다.

선관위는 이를 설명할 때 '결과'를 매우 강조했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결과적으론 문제가 없지 않냐는 말이다.

이에 앞서 4월 17일부터 기자는 수곡면 취재에 나섰고 4월 19일 수곡면 주민 3명에게서 "나는 관내사전투표에서 새누리당을 찍지 않았다"는 증언을 받았다. 증언을 뒷받침해 줄 정황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4월 19일 오후 진주시선관위에 전화를 했다. 증언이 나왔다는 말에도 선관위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반복했다. 이 때는 '과정'을 매우 강조했다.

그토록 완고하던 선관위가 왜 재검표 결정을? 

4월 19일 오후 4시 28분, 수곡면 몰표 사건을 다룬 기사가 온라인에 실렸다. 기사 조회수는 50만 회를 훌쩍 넘어섰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거의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글이 됐다. 대학생인 ㅇ씨는 인터넷에서 이 논란을 알았다. ㅇ씨는 19일 저녁 8시 50분경 진주시선관위 직원에게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했고, 그날 밤 진주시선관위는 대강의 정황을 그제야 파악했다. ㅇ씨의 고백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을 것이다.

20일 아침 진주시선관위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선관위원들을 소집하고, 기자들에게 재검표를 할 테니 와 달라고 했다. 오후 2시 진주시선거관리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그들은 '재분류'라고 부르는 재검표가 결정됐다. 선거 소송을 거치지 않고 선관위 자체 결의로 봉인된 투표용지를 꺼내는 일이 벌어졌다. 곧 개표가 잘못됐다는 것이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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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투표용지를 꺼내기 직전 모습./임종금 기자

다른 기자, 시민단체 회원, 심지어 30년 넘게 이 업무에 종사해 온 박용백 사무국장 조차 '내 기억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었다. 재검표 결과 수곡면 새누리당 표 67표가 명석면 새누리당 표로 밝혀졌다. 대신 명석면에 있던 야당 표들 가운데 수곡면 표들은 제자리를 찾았다. 총 득표수에서 변동이 없으므로 사건은 이렇게 종료가 됐다.

재검표 당일, 시민단체나 참관인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박용백 사무국장은 홀로 고군분투했다. 심지어 "심야에 투표지 색깔이 비슷하다 보니…"라며 그런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강변했다.

개표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재검표가 끝난 이후에도 제보는 이어졌다. 진주시 중앙동에서 관외사전투표에서 김해시장 재선거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나왔고,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진주시선관위에서 부정선거 감시단으로 일했다는 사람은 '관행, 무사안일에 찌들어 있는 조직입니다'라고 토로했다.

진주시선관위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선거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특히 사전투표가 생기면서 신경써야 할 부분이 늘어났다. 따라서 선관위가 실수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중요한 건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곡면 비례대표 결과를 놓고도 '교차투표 현상으로 일어난 엄청난 우연의 일치' 정도로 취급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경남지역에서 선거 업무에 종사해 온 사람들이다. 대강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표가 나온다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이상하다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ㅇ씨의 고백이 있기 전까지 선관위는 그야말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선거가 복잡해진 만큼 선거사무원 교육이 철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특히 과거 선거사무원은 교사나 공무원이 주로 동원됐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그런데 진주시선관위는 '너희들이 직접 개표해 보면서 부정선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봐라'는 주관적 이유로 대학생을 대거 모집해 문제를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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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표 대기 중인 선거사무원들./임종금 기자

그들은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아직도 모른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지만, 진주시선관위는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단체 회원들과 참관인들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몰아부쳤지만 선관위 직원들과 선관위원들은 침묵을 지켰다. 재차 항의를 하자 박용백 사무국장은 "치밀하게 사무원 교육을 하지 못한 저의 실수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회원들과 참관인들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선거관리위원장에게도 사과를 요구했다. 이승택 위원장은 자리에 앉은 채 "직원들 실수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정식'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찍을 수 없었다. 혼란한 와중에 그저 한 마디 하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됐다.

재검표가 이뤄지는 2시간 남짓한 짧은 만남 동안 박용백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두 번이나 한 말이 있다. "젊은 사람이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도 좀 보고 그러세요."

진주시선관위는 근본부터 변해야 한다. 아직도 그들은 이번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선관위의 신뢰성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준 일인지 모르고 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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