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스토리·연기 비판 딛고 어느새 시청률 20% 훌쩍…현실과 다른 '로맨스'에 열광

재벌 2세와 가난한 싱글맘. 여기에 좀 더 극적 장치들을 보태보자.

재벌 2세 지훈(이서진)은 '사랑 따위 필요없는' 안하무인 냉정한 성품의 소유자다.

가난한 싱글맘 혜수(유이)는 죽은 남편이 남겨둔 사채 때문에 딸과 함께 쫓겨 다니는 신세다. 그런 와중에 뇌종양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은 자리에.

이 둘은 계약결혼을 한다.

재벌 2세는 아픈 어머니를 위해 장기를 이식해 줄 여자가 필요했고, 가난한 싱글맘은 홀로 남을 딸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오해로 시작된 만남, 계약으로 맺어진 인연.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아! 이 둘은 사랑하게 되겠구나.'

종영까지 2회분을 남겨둔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토·일 밤 10시)은 클리셰(진부한 구성)의 종합선물 같은 설정으로 시작했다.

MBC 〈결혼계약〉의 한 장면.

온 세상이 '싸가지' 금수저들의 비행을 성토하지만 극적 전환의 효용성을 높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오만불손' 재벌 2세와 가난한 시한부 싱글맘이라는 최루성 비련의 여주인공 만남이라니.

여기에다 현실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1970년대부터 학습되어온 신파의 전형은 이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마저 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시청률은 20%를 훌쩍 넘기며 같은 시간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 초반 시청자게시판의 상당 지분을 차지했던 진부한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연기와 관련한 비판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호평 일색이다.

'클리셰의 바다'에 기꺼이 풍덩 빠져버린 것이다.

이서진과 유이의 '인생 드라마'라는 말까지 나오는 <결혼계약>에 어느새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엄마, 혼외자식이라는 세상의 시선 때문에 지훈은 인정받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살아왔다.

화려한 인생으로 보이지만 출생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그래서 지훈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어? 가족이잖아."

자신의 장기 이식을 위해 거짓 결혼까지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오미란(이휘향)에게 지훈은 무심한 듯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갖지 못했지만 딸과 알콩달콩 사는 것만으로 그저 행복했던 혜수의 단 한 가지 소원은 '사는 것'이다.

아들의 거짓 결혼을 이해 못 하는 미란은 자살을 결심하지만 혜수가 살려내고 설득한다.

"구차하게 살아도 사는 게 좋다."

온전한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던 지훈은 혜수의 딸과 시간을 보내며 온기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준 혜수에게 어느새 마음을 연다.

의지할 곳 없이 몰아치기만 했던 고단한 혜수의 삶에 비집고 들어온 지훈은 돈도, 명예도 다 버린 채 그녀와의 사랑을 택했다.

돈이 아닌 사람에게 기대고, 계약이 아닌 사랑에 빠지는 이들에게서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본다.

뻔하게 시작했던 드라마는 차근차근 현실을 끼워넣으며 뻔한 선택마저도 뻔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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