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서 꺼낸 이야기]김해 20대 여성 '구애 남성' 살해사건

적극적인 구애가 '순애보'처럼 받아들여지던 때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또한 '스토킹' 범주에 속하는 분위기다. 최근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어디까지를 스토킹으로 봐야 하느냐'가 양형 참작 사유에서 쟁점이 되기도 했다.

김해에 사는 20대 여성 ㄱ 씨는 평소 호감을 나타내며 자신을 종종 찾아오던 40대 남성이 다시 연락해 오자 '니 우리 집 올래? 오늘 니 죽여 버리려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ㄱ 씨는 실제로 남성이 집에 찾아오자 "줄로 손을 묶어야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며 빨랫줄로 몸을 의자에 묶고 눈을 가리고 입을 막았다. 그런 후 흉기로 남성을 찔러 숨지게 한 후 경찰에 자수했다.

ㄱ 씨는 범행이 있기 2년여 전부터 환청·환시·공격적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는 조현병을 앓았다.

국민참여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ㄱ 씨 어머니는 '딸 건강이 좋아지는 시기에 남성이 등장하면서 다시 나빠졌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변호인 또한 "본인과 가족 거부에도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고 찾아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증세가 악화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배심원들은 △남성이 보내는 문자메시지는 1개월 내외 주기로 한 번씩 있었고, 안부 정도의 간단한 내용이었던 점 △전화통화는 거의 없었던 점 △ㄱ 씨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 아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끔 들렀던 점 △이전까지 직접 집을 찾아간 것은 1회에 불과한 점 등을 들어 '심각한 스토킹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쪽에 무게감을 뒀다.

그러면서도 △ㄱ 씨가 정신적인 질환을 앓는 점 △문자 중에는 사랑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었던 점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등도 중요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당사자 상황 혹은 개인에 따라서는 제3자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배심원들은 양형 의견을 12~16년으로 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의 잔혹성과 결과 중대성을 고려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피해자로부터 피고인이 원하지 않는 관심과 애정표현을 받게 되자 조현병이 발현되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은 유리한 요소"라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판결에 대해 검찰과 ㄱ 씨 변호인 모두 항소했다.

한편 그동안 스토킹 관련 법안이 국회에 여러 차례 올라갔지만 통과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41호에 해당하는 규정이 있지만, '지속적'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 '반복하여'와 같은 내용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또한 10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가벼운 처벌만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제대로 된 피해자 보호뿐만 아니라, 때로는 무분별하게 '스토킹 가해자'로 매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관련 법 정비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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