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

저는 조은화(당시 17세·단원고 2) 엄마 이금희(46·오른쪽) 입니다. 남편과 함께 팽목항을 지키고 있어요.

사고 당일에도 오전에 9시쯤 아침을 먹었다고 연락이 왔어요. 얼마 후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구조된 은화가 젖은 옷을 입고 떨고 있을 것을 걱정하며 진도로 내려갔어요. 은화 오빠에게도 "옷 갈아입혀서 데려올게"라고 말하고 나왔어요.

사람들은 진상규명이 시급한데 아직도 인양을 말하느냐고 합니다. 2014년 4월 16일에 진상규명을 말한 사람이 있나요? 당시에는 구조와 인양이 먼저였습니다. 저도 그래요. 제 딸이 바닷속에 있는 730일 동안 제 달력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어요.

◇세월호 특별법에 인양 빠져 = 저는요 은화가 세월호 희생자 304명 안에 들지 몰랐고 그중 미수습자 9명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때 아이 시신을 꺼내달라고 함께 외치던 세월호 유가족은 이제 죽은 원인을 알려달라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세월호를 인양해 내 딸을 데려오는 것이 먼저입니다.

참 마음이 아픈 건요, 사람들이 유가족과 미수습자를 함께 본다는 거예요. 유가족 수가 많다 보니 유가족 이야기가 세월호 희생자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버렸어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는데 이 과정에서도 소수인 미수습자 가족들은 소외됐습니다. 이 법에는 미수습자 가족의 단 하나 희망인 '인양'이 빠졌습니다.

진상규명을 무엇으로 할까요.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사고 차량이 없이 어떻게 원인을 알아낼 수 있나요.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인양이 먼저입니다.

어떤 분들은 세월호 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저도 몰라요. 저 바지선 아래 세월호 안에 내 딸 은화가 있다고 그냥 믿는 겁니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이 그렇게 증언했고, 전문가들이 시신이 유실됐다면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떠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은화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니 1% 가능성이라도 믿어야지요.

◇"그래도 엄마니까 살아가" = 우리 은화는요 엄마, 아빠 걱정 끼치지 않는 아이였어요. 두 살 위 오빠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심장이 많이 아팠어요. 어린 마음에 오빠를 더 신경 쓰는 모습이 섭섭할 법도 한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 마음 헤아릴 줄 아는 사려 깊은 아이였어요.

세월호 참사가 16일 2주기를 맞는다.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사고 해역에서는 선체 인양을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12일 전남 진도 팽목항의 방파제를 찾은 추모객의 모습. /연합뉴스

은화 아빠는 하던 회사를 관두고 저와 함께 팽목항에 내려와 있습니다. 남편은 정말 성실한 사람이에요. 은화 오빠 치료비를 버느라 열심히 일만 했어요. 그 핑계로 은화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게 가장 큰 후회가 된다고 합니다.

생계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돈을 버는 사람이 없으니 빚만 쌓이고 있습니다.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 상황도 같아요. 바닷속에 있는 가족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지금은 그 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은화 오빠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다른 아이들은 더 안전한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은화를 먼저 보낸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밥 잘 먹고요. 자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제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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