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세월호 참사 2주-매주 수요일 촛불을 드는 사람들

가족을 잃었다. 마음이 끊어질 듯 아프다.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난다.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사고 원인조차 모른다. 그런데 주위에선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 그만하면 됐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때론 슬픔이 분노로 표출된다. 그래도 2년 가까이 그 슬픔이 내 슬픔이 되었으면 한다고 다가온 이들이 있다. 창원촛불모임이다.

그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을 위해 촛불을 든 것은 2014년 5월 1일부터다. 매일 저녁 경남 창원시 의창구 정우상가 앞에서 촛불을 켜고 희생자 추모와 함께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한 달 뒤부턴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수요일 거리로 나왔다. 처음엔 1년만 해보자고 했다. 그땐 뭔가 달라져 있겠지. 하지만 1년이 지날 때쯤 세월호특별법 개정이 이슈로 떠올랐고 멈출 수 없었다. 촛불만 드는 게 아니었다. 문화제를 열고, 세월호에 미수습자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세월호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을 했다.

하승우(19·부산 부경대)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말 정우상가 근처를 지나가다 세월호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는 피켓과 초를 들었다. 출발은 우연이었지만 하 씨에게 창원촛불모임은 필연이 됐다. 수능시험 하루 전에도 그는 기꺼이 촛불을 들었고 진학 때문에 거주지가 창원에서 부산으로 바뀌었지만 하 씨는 매주 수요일 정우상가에 있었다.

▲ 4·16 세월호 2주기 추모 촛불문화제가 13일 오후 창원시 정우상가 앞에서 열렸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하 씨는 "처음엔 슬프고 화도 많이 났다"면서 "시간이 흐르고 세월호 참사가 잊혀 간다. 하지만 아직도 세월호의 정확한 침몰 원인은 모른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강오선(여·45) 씨는 경남장애인권리옹호네트워크 상담사다. 시민모임 '리멤버 0416'(기억하라 4월 16일) 회원으로 창원지역에선 강 씨가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그녀는 언어장애에 뇌병변장애로 중복장애 3급인 남편과 함께 병원에 있었다. 병원 로비 텔레비전으로 본 세월호 침몰 과정은 충격이었다. 리멤버 0416에 동참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피켓을 들고 홀로 거리로 나갔다.

강 씨는 "혼자서 하긴 힘들었다. 리벰버 0416 회원이 창원촛불모임을 소개했고 지난해 3월부터 매주 참가하고 있다. 내 작은 한걸음이 큰 물결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원 구석진 곳에서 피켓을 100번 들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길을 지나가는 사람, 적어도 한 명은 본다"고 말했다.

강 씨는 "세월호 그만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가족을 잃으면 10년은 넋을 잃는다. 그들이 슬퍼해야 할 시간, 감정을 표출해야 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들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희·이김춘택 부부는 수요일 저녁 아예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창원촛불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년 가까이 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세월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그들에겐 위안이다.

아내 이정희 씨는 "다들 자발적으로 모였다. 평균 15명은 온다. 진행자는 따로 없다. 노래 부르고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공연을 하기도 하고 없으면 영상을 틀어 놓는다"면서 "혼자서 세월호 참사에 마음 아파하는 것보다 창원촛불모임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창원촛불모임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원 북콘서트,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의 과정을 기록한 영화 <나쁜 나라> 상영회,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창원촛불모임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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