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5년 동안 첫째를 고이 길러 막 집으로 돌려보내고 남편 따라 중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아내는 뒤통수를 맞은 듯 망연자실 말을 잊었다. 게다가 태몽이 쌍둥이였는데 그게 현실이 되다니.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남북으로 갈라진 아픔과 닮은 한 가정의 운명이 새 생명을 둘러싸고 미묘한 갈등으로 번지고 있었다.

딸이 첫째를 가졌을 때 아내는 창원 상남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목이 좋아서 일한 만큼 매상이 올라 당시 대학에서 꽤 높은 보직에 있던 내 월급은 반찬 값 정도에 불과했다. 산달이 다 돼 가자 아내는 과감히 사업을 접었다. 아내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고 실천은 과감했다. 방송국에 다니는 딸과 사위는 첫째를 키울 형편이 아니었지만 얼마나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 알기에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식들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아내는 산후조리원에서 첫째를 데려와 키웠다. 덕분에 자식들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고 주말에 아이를 보며 행복해했다. 연어의 모성애로 견딘 다섯 해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둘째 육아 문제에 대해 아내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자식들 사정만 봐 주다가는 남은 인생이 너무 허망하고 외국에서 홀로 생활해야 하는 남편의 희생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두고 노모를 뵈러 가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답을 내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쉬었다. 구순이 다 되신 노모께서 답을 주셨다. "그만치 했으면 됐다. 이제 신랑따라 중국 가서 살아라. 나도 내 새끼가 중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마음을 정했다. 노모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 새끼를 위해 남은 육신 한 번 더 내어주기로. 부모는 죄다, 그래서 스스로 족쇄를 차는 것이다. 육신보다 영혼의 평안을 택한 번민의 끝에는 종교적 명분이 있다.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기쁘게 영접해야 한다.

그 주말에 뱃속 아이까지 여섯 가족은 필리핀 세부로 태교여행을 떠났다. 시원한 바다를 보며 그 동안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 오랜만에 좋아하는 컬렉션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첫째는 하늘을 날아다녔다. 5년 동안 첫째를 키우면서 서로 섭섭한 점이 적지 않았다. 둘째가 만든 가족 여행에서 첫째로 인한 앙금과 둘째로 인한 갈등이 한꺼번에 녹아내렸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이 많다. 부모의 도리를 행하되 어떻게 해야 가장 지혜롭고 교육적인가에 대한 내 나름의 솔루션이다. 유산을 남기지 말고 살아서 조금씩 행복한 추억을 나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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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나 돈, 어느 하나라도 자식에게 기댈 형편이면 길을 나서지 마라. 그리고 몸보다 마음이 편한 쪽으로 결정하면 후회가 없을 것. 이번 여행은 화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번 여행으로 뱃속에 있는 아이가 가장 편해졌을 것이니 제대로 된 태교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김경식(시인·중국 하북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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