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에서 사부작] (7) 3코스 구운몽길 마을 고샅고샅

남해 노도에는 '노자묵자할배'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옛날에 노도 동쪽 큰 골짜기에 어떤 노인이 와서 초가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만날 하는 일 없이 놀고먹고 하며 먼바다만 바라보고 있어 사람들이 그를 노자묵자할배라 불렀다. 노인은 섬에 온 지 이태 만에 죽었는데, 섬사람들이 큰골 산등성이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이 노인이 조선 시대 대표적인 글쟁이 서포 김만중(1637~1692)이다.

남해바래길 3코스 구운몽길(미개통)은 이 노자묵자할배 전설로부터 시작한다.

◇노도 = 노도는 3코스가 시작하는 벽련마을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여객선 '노도호'가 매일 시간을 정해 왕복 운항한다. 지금은 북쪽에 마을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마실 물이 나는 섬 동쪽 큰 골짜기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지금도 동쪽 큰골 해안에 상수도 시설이 있다. 김만중이 살았던 움막도 큰골에 복원돼 있다. 움막 주변은 온통 동백나무다. 움막 옆으로 김만중이 스스로 팠다는 샘터도 남아 있다. 사람들이 죽은 김만중을 묻었다는 곳을 '허묘(虛墓)'라고 하는데 계단을 따라 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한다. 시신은 이곳에 두 달 정도 묻혀 있다가 가족들이 와서 옮겨 갔다고 한다. 노도는 옛날에 배의 노(櫓)를 많이 생산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김만중이 팠다는 샘터.
노도에 복원해놓은 김만중 유배지 움막.
김만중 허묘.

◇벽련마을 = 마을이 연꽃을 닮았다 혹은 마을 앞 노도가 연꽃을 닮았다 해서 연화(蓮花)라 불렸다가 훗날 벽련(碧蓮)이라 했다. 혹자는 벽련이 3000년마다 피는 푸른 연꽃, 우담바라를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금산 중턱에 서불과차라 새겨진 고대 암각화가 유명하다. 중국 진시황(秦始皇) 때 불로초를 구하러 떠난 서불(徐市)이 남해섬 금산에서 한동안 머물며 사냥을 즐기다가 떠나면서 남긴 것이라 한다. 벽련마을 입구에도 비슷한 시대 암각화가 있다. 도로 주변에 있는데 표지도 없고 그냥 바위만 덜렁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바위에는 사람이 새긴 것 같은 문양이 있다. 서불을 연구하는 중국 고고학자 중에는 이 벽련마을 암각화가 서불과차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두모마을 = 옛날에 마을을 지나던 도사가 마을 이름을 '두모(豆毛)'라 하면 잘살 것이라 해서 두모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혹은 큰 항아리 같은 바닷가라는 뜻인 '드므개'에서 '두모'로 바뀌었다고 한다. '드므'는 궁궐같이 중요한 건물, 네 모퉁이에 방화수를 담아 놓은 큰 그릇이다.

마을 뒤편으로 금산이 우뚝하다. 북쪽으로 금산 부소대에서 시작한 계곡, 동쪽으로 천황산 계곡, 서쪽으로 벽련산 계곡이 합쳐져 두모천이 되어 바다로 흘러든다. 시기가 맞으면 친환경 농사나 바다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을 뒤편으로 대규모 유채꽃 단지가 있는데, 매년 4월이면 두모유채꽃축제가 열린다.

두모마을 유채꽃단지.

◇소량마을, 대량마을 = 약 400년 전 경기도 임진강 주변 양아리라는 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해섬으로 옮겨와 정착했다. 이들은 마을을 이르면서 양아리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양아리는 후에 여러 마을로 나뉘었는데, 벽련마을, 소량마을, 대량마을 등이다. 노도에서 바라보면 더블유(W) 형태 해안선에 포구가 두 개 보이는데 '양아개'라고 부른다. 이 중 작은 양아개는 소량, 큰 것은 대량이라 불리게 됐다.

소량마을은 이름 그대로 작고 소박한 마을이다. 옛날부터 이웃 간의 정이 좋고 성실하고 착한 이들이 사는 곳이라 알려졌다. 대량마을은 9.3㎞에 이르는 남해섬 남쪽 해안 절벽이 시작되는 곳이다.

◇상주마을, 금전마을, 임촌마을 = 상주해수욕장(은모래비치)은 옥색 바다와 은빛 모래사장,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남해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넓은 들판에 4개 마을이 모여 있다. 이 중 해수욕장을 공유하는 마을이 세 곳이다. 바래길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금전마을이다. 옛날에 밭이 많아 금전(金田)이라 했다. 금전마을에서 금전천을 경계로 상주마을이 이어져 있다. 마을이 형성된 모양이 한자 상(尙)을 닮아 상주라 했다고 한다. 현 상주초등학교 주변으로 옛 상주보성 성곽이 일부 남아 있다. 임촌마을은 상주마을과 금양천을 경계로 이웃하고 있다. 송림 등 수목이 울창해 임촌(林村)이라 했다. 해수욕장 끝에는 유람선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세존도까지 다녀올 수 있다.

◇금포마을 = 마을 앞바다 모래 속에 검은 쇳가루가 많이 섞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순 한글로 '쇳개'다. 마을 주변에 금 광맥이 있었는데, 이것이 마을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마을 끝 펜션 주변에 금을 캐던 동굴이 아직 남아 있다. 금포마을은 물메기로 유명하다. 바다에서 물메기를 잡아 올리는 통발을 처음 만든 곳이 금포마을이라고 한다. 물메기는 마을 주민 주 소득원이다. 겨울에 두 달 동안 물메기를 잡아 일 년 치 생활비를 모두 번다고 한다.

절경 속에 자리잡은 금산산장.

◇금산과 보리암 = 금산은 소금강, 남해금강으로 불릴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애초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산 속에 보광사를 지으면서 보광산으로 불렸다. 그러다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한 끝에 조선 왕조를 건국하게 됐다. 이성계는 산신에게 감사하다는 뜻에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르겠다 약속했고 그래서 비단 금 자를 써서 금산(錦山)이 됐다고 전한다.

금산 정상에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 하나인 보리암이 있어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보리암에서 조금만 더 가면 유명한 금산산장(옛 부산여관)이다. 옛 시절 보리암을 찾은 신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인데, 지금은 절경을 끼고 막걸리 한 잔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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