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14편

4월 서해는 대부분 조기의 계절이다. 푸름이 산과 들을 가득 채울 때면 초순에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이 들고 하순에는 곡우(穀雨)라는 절기가 다가온다. 들판에는 푸른 보리가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춤을 추며 햇살을 마음껏 품은 실한 알곡을 키워낸다. 맑은 날 햇살에 출렁이는 보리밭은 가슴깊이 숨겨두었던 푸른 유년의 꿈을 들추어내기에 충분하다. '보리밭에 문둥아 해 다 졌다 나오너라'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가 아스라이 눈시울을 적신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라는 서정주 시 역시 눈물 한줄기 뜨겁게 끌어올린다.

이때쯤이면 조기는 떼를 지어 남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회유한다. 조기가 산란을 위하여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연평도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 중간에 태안반도, 변산반도 등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즉 흑산도 아래 바다에서 겨울을 지낸 조기가 곡우 때 즈음이면 칠산 어장에서 서해안의 고군산열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때 산란 직전에 잡히는 조기를 '곡우 사리'라 부른다. 곡우 사리는 살이 기름지고 연하고 맛있어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조기이다.

생선 중에도 신분의 귀천이 있다. 가장 대접받는 물고기는 단연코 조기일 것이다. 조기는 모든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향교의 석전대제나 재실의 향사(享祀), 시제(時祭), 기제사(忌祭祀) 등에는 물론이고 마을의 당산제나 굿당이나 신당의 상에도, 또한 옛날 환갑잔치나 혼례식, 생일, 돌 등 관혼상제의 중요한 행사 때 차려지는 상에도 조기는 번듯하게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중 참조기가 제일로 손꼽힌다. 참조기가 이렇게 대접을 받는 이유는 조기가 기운을 돋우는 생선으로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고기 조기가 기를 돋우는 조기(助氣)의 의미로 읽힌 것이다. 또한, 조기는 비늘이 많아서 풍요를 상징하는 물고기로 알려졌다.

조기. /박태성

조기는 그 종류가 매우 많다. 일반적으로 조기는 민어과에 속하는 것으로 참조기, 보구치(백조기), 수조기, 부세, 흑조기, 민어 조기 등이 이에 속한다. 조기는 한자로 '석수어(石首魚)' 혹은 '종어'라 부르며 서해안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남해안에서도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에는 조기가 나는 곳으로 진동(옛 진해), 웅천(현 진해), 창원도호부, 칠원(현 구산면) 등 우리 주변지역의 바다를 모두 언급하고 있다. 현재 김해, 창원, 고성, 거제 앞의 바다에서는 모두 조기가 잡혔다는 이야기다.

김려의 <우해이어보>에는 조기에 대한 언급은 없고 조기와 비슷한 종류의 물고기를 등재하였다. 석수사돈(石首査頓)이 그것이다.

"석수사돈(石首査頓)은 석수어(石首魚) 즉 조기와 비슷한데 조금 작다. 꼬리가 뾰족한 편이고 옅은 홍색을 띤다. 지져서 먹으면 조기와 맛이 비슷한데 말리면 조금 매운 맛이 난다. 지방말로 아내의 아버지와 사위의 아버지 관계를 사돈(査頓)이라고 한다."

사돈은 대개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면이 있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로도 사용된다. 석수사돈은 조기와 비슷하지만 조기가 아닌 것을 말하는데 몸이 약간 길고 옅은 홍색을 띤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진동 일대에서 잡히는 조기 종류로 수조기나 부세 등일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 중에서 머리 상단부에 다이아몬드 형 표시가 있고 그 속에 유살 돌기 즉 하얀 돌과 같은 뼈가 들어 있는 것이 참조기다. 참조기를 통째로 소금 간을 해서 말린 것을 '굴비'라 한다. 영광 법성포는 굴비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의 척신 이자겸이 모반을 하려다가 발각되어 1126년(인종 4) 정주(지금의 영광)로 유배되었는데, 이곳에서 굴비를 맛보고 지금까지 그 맛을 모르고 개경에 살았던 것을 후회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이를 통해 정주굴비, 즉 영광굴비가 이미 고려시대부터 유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굴비도 곡우 때 잡힌 조기로 간을 해서 말린 것을 최고로 치는데 '곡우 사리 굴비' 또는 '오가재비 굴비'라 하여 특상품으로 취급된다.

<어업요(漁業謠)>(국립문화재연구소)에는 어민들이 서해안의 칠산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가 실려 있다.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에서 채록된 노래이다. "칭야나 칭칭나네 칭야나 칭칭나네/ 갈치 칭야 나던가 칭야나 칭칭나네/ 조구칭야 나던가 칭야나 칭칭나네/ 황금 같은 조구야 너는 죽어 나쁘지만/ 나는 너 잡은 게 좋다 어라 칭칭나네" 또한 "돈 벌러 가자 돈 벌러 가자/ 칠산 바대로 돈 벌러 가자/어기여차 어기여차." 이 노래는 조기 망태기를 벌려 놓고 족바지로 조기를 푸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이런 노래구절은 당시 조기조업이 어민들의 경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해이어보>의 산실인 진동면 고현리 일대에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 이때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망보는 자리를 바닷가 산 위에 설치하는데 이것을 산망(山望)이라고 하였다. 고기떼가 모이는 방향을 가리키는 깃발을 가지고 올라가 고기떼의 위치를 산망주(山望主)에게 알려주면 산망주가 어부들을 모아서 위치를 정하고 지시에 따라 조업을 하게 된다. 잡은 고기는 공통으로 분배한다. 이러한 산망을 통한 고기잡이는 우리 지역 가덕도에서 숭어잡이를 할 때 산 높은 곳 망대에서 숭어가 들어오는 길을 보고 깃발로 신호를 하여 그 길을 둘러싸서 고기를 잡는 방법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에서는 남서풍이 불면 풍어가 되고 샛바람이 불면 흉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샛바람은 동풍을 말하고 남서풍은 늦마바람이라고 한다. 남풍이 늦바람이고 서풍이 마파람이므로 이 둘을 조합한 말이다. 올해는 남서풍이 순탄하게 불어 풍어가 되고 맛난 조기들이 풍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