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주민들이 선택한 정치…국민을 제대로 돌보는 국회의원 뽑아야

"선거 때마다 우리는 1번밖에 몰랐다. 그 1번이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아갔다."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9) 아지매는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밀양 주민 28명은 녹색당 입당 회견을 하며 자신들을 대신해 출마한 765㎸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2번)을 국회로 보내달라고 했다.

칠순, 팔순의 노인들이 지지도가 낮은, 그것도 국회의원 1명 없는 정당에 입당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생존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힘 있는 집권당이나 제1야당이 보탬이 될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면서 제 역할을 못하는 정치를, 자신들을 외면하는 정치를 뼈저리게 느꼈다.

영자 아지매가 녹색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누군가 밥상에 오를 먹거리 농사를 지으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여긴 자부심이 지난 10년 동안 평화로운 마을이 산산조각난 '밀양 전쟁'을 겪으며 무너졌다. "나는 국민이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다. 나라가 데모꾼으로 내몰고 국익에 반하는 이기주의로 매도할 땐 "진짜 힘들었다"고 했다. 국가폭력에 몸과 마음을 다친 모멸감의 표현이다.

다른 정당들이 경제와 돈을 이야기할 때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자신들에게 녹색당이 "우리 편이 돼 주었다"고 했다. 그 투쟁 과정에서 녹색당원들이 보여준 질긴 연대를 잊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당원이 된 것이다. 영자 아지매에게 국회의원은 "우리같이 힘든 사람은 관심 밖"인 정치인으로 보였다.

밀양 주민들은 녹색당 지역후보 5명, 비례대표 5명 이름을 부르며 국회로 보내달라고 호소한다. 10명이 당선하면 "세상이 히뜩 뒤집힐 것이다"면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해군기지 반대하는 제주 강정, 세월호 유가족과 용산참사 가족들, 해고와 싸우는 노동자들 농성 현장, 핵발전소 반대투쟁을 하는 삼척·영덕을 찾아다니며 연대의 끈을 이어왔다. 이미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정치가 돌보지 않는 곳에서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할 수 있는 정당을 원하는 것이다.

밀양 할매·할배들의 선택을 보며 나를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정치를 원하고 있는지. '밀양'과 '나의 처지'가 다를까. 밀양 투쟁은 국가폭력에 짓밟힌 인권,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정책과 탈핵, 다수 이익이라는 가면을 쓴 개발, 신자유주의와 공동체 와해 등 우리 사회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다르지 않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미래가 없는 청년, 해고와 비정규직에 내몰린 노동자, 거대 자본의 횡포에 살길 막막한 자영업자, 개방과 가격 폭락 벼랑에 선 농민, 자식 육아·교육·학비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학부모, 고령사회 짐짝 취급받는 노인…. 우리는 국민으로 인정받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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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 같은 거창한 생각보다 나와 가족들에게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 따져보자. 과연 누가 우리 편인지 말이다. 이번 총선에서 '내 편'을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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