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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르신 부모같이 모시는 귀농부부가 있어요"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3) 의령군 화정면 정창석·서현옥 부부

하청일 기자 haha@idomin.com 2016년 04월 04일 월요일

한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친정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홀로 계시는데 그 마을에 요양을 겸해 귀농한 부부 이야기를 '청바지'에 소개해 줄 수 없느냐는 내용이었다. 그 부부가 딸인 자신보다 더 어머니를 잘 보살피는 등 동네 어르신들을 내 부모같이 모시면서 인생을 즐겁게 사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의령군 화정면 장박마을 정창석(56)·서현옥(53) 부부다.

◇동네 어르신 건강 지킴이 자처한 부부 = "별로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순정 씨가 말을 부풀렸나 보네요. 동네 어르신들이 나이가 많다 보니 병원에 갈 일이 많죠. 하지만 자식들은 대부분 도회지에 나가 있고, 이동하려면 불편하겠다 싶어 우리 아저씨가 태워드릴 뿐인데 그걸 이야기했네요."

아내 서 씨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내 부모 모시기도 꺼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마을 어르신을 극진히 보살핀다니 대단하다.

독자가 친정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기면 이렇다. '새벽마다 마을 분들과 둑길 걷기운동을 하고,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께 문안전화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우스 일 틈나는 대로 마을 어르신들을 승합차에 태워 식사대접하는 것도 즐긴다.'

서 씨는 큰며느리여서 남편과 줄곧 시부모님을 모시다 보니 몸에 밴 일상이라고 했다.

"결혼하고서 시부모님에다 시동생, 시누이들까지 한 집에서 대가족이 생활했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살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부모처럼 느껴졌죠. 귀농하기 전 창원에 살 때도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평상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아저씨가 막걸리를 사다 드리곤 했죠. 그러다 보면 옆집에서 김치전 등을 구워 오고, 순식간에 동네 잔치판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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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의령으로 귀농한 정창석·서현옥 부부. 지난해 경매에서 낙찰 받아 아들에게 맡긴 파프리카 시설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사람 좋아하던 정 씨, 보증 탓에 화병 얻어 = 정 씨는 1985년부터 창원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했다. 사람을 좋아하니 주위 부탁을 거절 못 해 지인의 보증을 서게 됐다. 결국 문제가 생기면서 고스란히 빚을 떠안게 됐다.

"사람 좋아하다 벌어진 일이라 잊어버리자고 했지만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이어졌죠. 그러다 보니 입맛도 잃고 얼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하루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졌습니다." 화병이었다.

"음력 2월 중순이 장모님 기일입니다. 기일에 우리 얼굴을 본 처형이 깜짝 놀라더군요. 우릴 그냥 둬선 안 되겠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장모 제사를 지내고 온 지 보름도 안 돼 처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형이 사는 동네 인근에 피망 하우스가 나왔는데 농사 한 번 지어보라는 것이었다. 부부는 뜻밖의 제안이 황당했다. 함양과 산청이 고향이지만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농사의 농' 자도 몰랐습니다. 엄마처럼 의지하던 언니가 권하는 일이라 믿음은 있었죠. 우선 농사보다도 아저씨 병이나 낫게 하자는 마음으로 1300평 피망 하우스를 인수했죠." 그게 2012년 6월이었다.

막상 피망 하우스를 인수했지만 부부는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재배 과정을 배워야 했지만 다들 바쁜 탓에 기술을 전수할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단다.

그래도 부부에게 농사에 운이 있었다고 했다. 병이 들어도 주먹만 한 피망이 열리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해 피망 가격도 좋아 본전은 건질 수 있었단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다시 창원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병든 피망 하우스에서 발만 동동거렸으니 당연했겠죠."

정 씨가 재미있지만 가슴 시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우스 농사에서는 관리기가 필수인데 그런 기계도 모른 채 진짜 '삽질'을 했다는 것이다.

"피망 하우스에 물을 대려고 골을 팠습니다. 그런데 관리기라는 게 있는지 모르고 집사람과 아들까지 동원해 한여름 하우스 안에서 삽질을 했죠. 하우스 더위에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참 우습지만 아픈 이야기죠. 또 한 번은 하우스 가운데에 고추를 심었는데 농약을 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는 분이 약을 한 통 타주고 가더라고요. 그분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했겠죠. 하지만 우린 얼마를 쳐야 하는지 몰라 그걸 다 뿌렸습죠. 그랬더니 고추가 강한 약성을 견디지 못하더군요."

◇농사에 매달리다 잊힌 아픈 기억 = 그런데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사이 부부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창원에서는 그렇게 잊으려 노력했던 기억이 점차 옅어가고 있었다. 농사일에 지친 몸은 불면의 밤을 잊게 했고, 동네 할머니들과 즐겁게 지내는 시간은 손끝에까지 전해오던 통증을 언제부턴가 걷어냈다. 정 씨 얼굴엔 화색이 돌고, 부부의 건강이 '보증사건'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처형의 처방이 주효했다.

부부는 이제 농사 영역까지 확장했다. 인근 파프리카 시설하우스를 인수해 큰아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저희 부부가 병도 낫고 농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한 것은 동네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으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죠. 사실 도시에서는 연세 높은 분들도 영화를 보거나 여름철 피서를 떠나는 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할머니들이 우리와 함께 영화도 보고 매년 백무동으로 피서를 떠나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나 봅니다. 비록 영화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주에 영화 보러 간다는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더라고요."

서 씨도 할머니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종종 김치나 먹거리가 먼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갖다 둔 것이죠. 그분들도 생색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누가 갖다 둔 것인지 모르고 우린 먹습니다. 이곳은 넉넉한 인심이 있는 마을입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동네 어르신 부부가 푸짐한 족발에 김밥을 들고 하우스로 찾아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이 참 먹음직스럽다. 갑자기 점심상이 펼쳐져 더는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수익을 물어봐야 하는데 어쩌나….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따뜻한 마음들이 하우스에 퍼져 있는데 그 분위기를 깰 순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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