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종 '앉은뱅이 밀'로 세상에 도전하다

뉴미디어 온라인 담당은 페이스북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며 업무를 시작한다. 미담과 궂은 소식, 행사 정보, 속보 등등. 이 정보들은 때론 취재 아이템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 2월 11일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담벼락에 적힌 '아직도 안 드셔 보셨나요? 라면계의 허니버터칩, 토종 앉은뱅이 우리 밀 라면입니다. 진짜 맛있는데 말로는 설명이 안 되네. 크크'와 '그냥 라면이 아닌 농부의 마음과 노동자의 정성을 담은 라면'이라는 문구는 라면광인 기자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바로 이거다. 취재도 하고 라면도 맛보고."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하며 경남 진주시 금곡면 동례리 농산물 직거래 장터로 향했다.

문 닫은 모교에서 '앉은뱅이밀'로 라면을 만들다

"온라인 직거래 장터에서 주문하셔도 되는데 직접 사러 와주시니 더 고맙네요. 이왕 오신 김에 '앉은뱅이밀라면'도 맛보시고 토종 우리 밀로 피자도 직접 만들어 보세요. 바로 옆 교실이 우리 밀 체험장입니다."

천병한(46) 밀알영농조합대표이사는 먼저 '우리 밀 쿠키 체험장'으로 안내했다. 휴일을 맞은 가족 단위 체험객 30여 명이 밥상 위에 음식 재료를 펼쳐 놓고 밀가루를 반죽하며 요리에 여념이 없다. 앞치마와 요리 머릿수건을 두른 여자 강사는 토종 '앉은뱅이 밀'과 수입 밀의 장단점을 설명하며 좋은 먹거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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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설명하는 김영미(37) 씨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되는 밀알영농조합원이고 늘 같이 고민하는 농민 운동 활동가이죠. 또한 집에서는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죠. 여기가 저희 가족 삶의 현장입니다."

그는 폐교한 진주시 금곡면 구 금곡초등학교 교무실을 활용한 영농조합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이어갔다.

"영농자금 받아서 번듯한 건물 짓고 사업하면 모양은 그럴듯해도 다 속 빈 강정입니다. 문을 닫은 이 금곡초등학교가 제 모교인데 예전에는 여기서 세상의 지식을 얻었지만 지금은 삶의 경험을 나누어주고 있죠. 사무실에 출근이 아니라 매일 등교하는 마음으로 오고있죠.(웃음)"

체험에 쓸 밀가루를 빻는 즉석 제분기가 놓인 사무실에는 변변한 소파나 탁자도 없다. 컴퓨터 한 대와 프린터가 놓인 책상 두 개가 전부다. 천 대표는 사무실 바닥에 앉자마자 지난 8개월 동안 진행된 국내 최초 '앉은뱅이밀라면' 탄생 비화를 쏟아냈다.

"99% 수입되는 외국산 밀은 요리적성은 좋아도 글루텐 함량이 많은 경질 밀이고 토종 앉은뱅이 밀은 단백질 성분 함량이 적은 연질 밀이라 소화장애나 아토피 발생이 현저하게 낮다고 농학계에 알려져 있죠. 이렇게 좋은 토종먹거리를 많이 보급하기 위한 방법으로 라면을 선택했죠. 수입 밀을 사용하는 국내 메이저 라면 시장이 아닌 우리 밀을 사용하는 1% 마이너리그에 '앉은뱅이 밀'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죠. 또 1차 생산품인 밀가루가 아니라 2차 가공품을 만들어야 지역에 밀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계약재배를 할 수 있기에 더욱 절실하게 제품 개발에 매달렸는데 8개월 만인 지난 2월 11일 첫 제품이 선을 보였죠. 이것은 라면이 아니라 농부의 마음이죠."

10년 만에 졸업한 영문학도의 선택 '농민 운동'

진주시 금곡면이 고향인 천 대표는 1990년 경상대학교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신이 걸어온 농민의 삶이 아닌 도회지 선생님으로 그가 자리 잡기를 원했다. 하지만 청년학도 천병한의 핏속에는 농부의 DNA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름방학 농촌봉사활동 다니며 기울어진 현실에서 불평등한 농촌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사회 현실에 눈을 뜨며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방법이 학업보다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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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에 입학한 1990년 농민 운동의 자주적 단일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출범했죠. 그리고 학교 다니던 1990년대는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 저지를 통해 쌀 개방을 막기 위한 농민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농민 운동 활동가가 된 것은 필연적인 것 같아요. 덕분에 대학 졸업장 받는데 딱 10년 걸렸습니다."

운동권에 몸을 담으면서도 원만한 학과 생활 덕분에 천 대표를 지도하던 교수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99년 졸업 후 영농조합법인에서 2년 근무를 하고 고향 금곡면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고 농민 운동을 펼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고향 논을 밟으며 먼저 진주농민회 금곡면지부를 만들었다.

"금곡농민회에서 나이가 어려 말뚝 총무 4년을 했죠. 당시 주변 어르신들은 농사부터 잘 짓고 운동하라고 하셨지만 농민회 일 때문에 농사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죠. 거기에다 2005년 전국농민회총연맹 파견 간부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전업농과 활동가 사이에 간극을 줄이기 위해 더욱 열심히 농민 운동을 했습니다."

그는 2009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처장직을 내려 놓을때까지 서울에서 활동한 시기를 제2의 운동 전성기로 꼽는다. 파견 간부로 전국을 돌며 우리 농촌 현실과 문제점을 세세하게 접했다. 또 그는 변화의 물결로 다가올 미래 농촌의 모습을 그렸다. 1차 2차 산업이 아닌 고부가가치의 농업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확신한 것도 전체 농민 운동을 이끌고 가던 이 시기였다.

"서울에서 돌아와서 2년간 진주농민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임기를 마쳐 갈 때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그 전화가 두 번째 농민 운동의 시발점이 된 거죠."

토종 '앉은뱅이 밀'에서 미래를 만나다

천 대표는 2012년 다시 진주시 금곡면으로 향했다. 10여 년 전에는 농사짓고 농민 운동을 위해 고향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농사가 아닌 농사업을 위해 돌아온 것이다.

"진주농민회 사무국장 임기 말에 금곡면 금곡정미소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고향 특산품 토종 앉은뱅이 밀 시장개척을 위해 판매와 홍보를 부탁하는 전화였죠. 수입 밀 시장이 확대되고 우리 밀 가격경쟁력이 떨어져서 고향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었죠. 그래서 결심했죠. 이번에는 사업이다. 농민 운동하며 배운 홍보방법과 인맥도 활용하고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고향에 모두 쏟아 붓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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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는 12년 5월 금곡면의 젊은 농민 5명과 힘을 모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는 밀알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그리고 7개월 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거래 쇼핑몰 홈페이지 <농민장터>(www.miral1000.com)를 오픈했다. 천 대표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진주지역 토종 앉은뱅이 밀과 국내산 호밀가루를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단순한 농산품 판매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굴뚝 없는 공장, 녹색 산업인 관광체험을 접목시켰다. 그는 2013년 폐교한 모교 교실에 우리 밀 놀이 체험장, 우리 밀 쿠키 체험장, 에어바운스 놀이방 등 직접 수확한 우리 밀로 하는 놀이시설을 마련했다.

"수입 밀로 제분할 수 없는 통밀가루로 반죽한 쿠키와 피자 만들기 체험은 건강을 생각하는 도시 소비자분들에게 큰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 밀 통밀가루 피자에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토핑 재료로 활용함으로써 농산물 판매도 늘어났죠."

천 대표는 단순한 농촌체험이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체험을 통해 토종 앉은뱅이 밀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또 이번에 출시한 '앉은뱅이밀라면'을 통해 원재료를 뛰어넘어 토종 밀의 부가가치를 넓히는 게 그의 목표라고 한다.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앉은뱅이밀라면을 소개하면서 사무실 진열대에 놓인 라면을 가리켰다.

"좋은 먹거리 앉은뱅이밀라면 하나 끓여 먹고 인터뷰 할까요?"

농업, 6차 산업을 이끌 마지막 희망

천 대표는 올해 경상대학교 대학원 농학과에 진학했다. 10년 만에 졸업한 영어교육학 대신 농업학문을 택했다. 17년 만에 다시 잡는 책이지만 그 열의 만큼은 학부 과정 신입생을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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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영농조합도 더 키워야 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죠. 앉은뱅이 밀과 함께 갈 수 있는 우리 토종 농산물을 찾는 과정입니다. 지금으로써는 콩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밀과 콩을 연계시켜 2모작만 성공한다면 우리 조합 농민들의 소득도 크게 증가할 겁니다."

그는 학업 외에도 지역 공동체 삶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폐교를 활용해 밀알영농조합법인이 자리한 것처럼 늘어나는 폐교를 활용해 농민 소득을 증대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또 조합 주변 영천강변과 엄정마을 뒷산을 활용한 둘레길 개발을 통해 고향 마을을 관광 자원화한다는 포부도 밝혔다.

"농촌이 아직도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나 자치단체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죠. 3000년 농업 역사는 정직하지만 늘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준비해야죠. 분명한 것은 농업은 공동체적 운명을 가졌다는 것이죠. 요즘 귀농 귀촌하시는 분 중에는 혼자만 잘살아 보겠다는 분도 왕왕계시지만 결국 몇 년 안 돼서 다 떠나십니다. 농촌에 오시려면 함께 사는 방법부터 배우셔야 합니다."

복도가 왁자지껄하다. 피자 만들기 수업을 마치고 옆 교실에서 나온 체험객들이 사무실로 들어와 '앉은뱅이밀라면'을 구입한다. 체험강의를 마친 천 대표의 아내 영미 씨는 다음 수업 우리 밀 케이크 만들기 준비물을 챙기며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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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기자님 운동권 농민 인터뷰는 잘하셨나요. 사실 애기 아빠도 멋지지만 금곡면에 토종 밀 관련해서 인터뷰 할 분이 많죠. 면사무소 근처에 3대째 운영하는 우리밀제분소도 토종밀지킴이인데 소개해드릴까요? 그리고 5분만 기다리세요. 신라시대 때부터 먹었다는 우리 토종 밀가루로 만든 라면이 끓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찾아야 할 취재원은 단 몇 초 만에 해결됐지만 앉은뱅이밀라면을 기다리는 5분은 50분보다 더 길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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