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vocabulary](3) filibustar-identity-kids

한 달에 영어 단어 세 개 정도 익히자고 정치 이야기를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정치 vocabulary' 세 번째 시간입니다. 팟캐스트 <우리가 남이가>에서는 '보카치오'라는 제목으로 방송합니다. 거듭 강조합니다만 영어가 메인(main)이고 정치는 양념이니 '교육방송'을 표방합니다. 지난 18일 녹음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우리가 남이가> 공동기획방송 '보카치오'를 들으려면

- 웹 주소 http://www.podbbang.com/ch/8406?e=21929217

- 포털 검색창에 '우리가 남이가 시즌2 보카치오'

- 팟캐스트 포털 '팟빵'에서 '우리가 남이가' 검색

filibustar(필리버스타)[명사] 무제한 토론(filibuster)으로 주목받은 사람(star)

한 달 전입니다.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습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08명이 테러방지법 표결을 막고자 '무제한 토론'(filibuster)을 신청합니다. 이날 김광진 의원부터 시작한 무제한 토론은 3월 2일 이종걸 원내대표까지 8일 남짓 이어집니다.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38명이 참여했습니다. 1인당 평균 토론 시간은 5시간입니다.

2월 23일 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해 47년 만에 국회에 재등장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은 정치사에 남을 숱한 기록과 이야깃거리를 뒤로한 채 지난 2일 종료됐다. 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방지법'에 대한 견해는 다를지 몰라도 이번 무제한 토론에서 드러난 국회의원 역량은 유권자들이 평소 손가락질하던 수준을 훨씬 웃돌았습니다. 이 가운데 도드라진 활약을 보인 의원이 있었고 이들은 말 그대로 '스타(star)'가 됐습니다. 팟캐스트 <우리가 남이가> 진행자 '청보리'·'흙장난'과 함께 꼽은 '필리버스타'는 더민주 김광진·은수미·홍종학 의원과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었습니다.

아울러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지방의회 즉 도의회나 시의회에서는 무제한 토론을 볼 수 없을까? 특히 지난 2013년 경남도가 진행한 진주의료원 폐쇄 당시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당시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 처리를 막으려던 야당 소속 의원들은 본회의장 점거까지 하며 버텼으나 결국 조례 처리를 막지 못했습니다.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조례 처리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무제한 토론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아직 지방의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겠습니다. 국회법과 달리 지방의회 규칙에는 무제한 토론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 역량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지금 여당 의원이 반대하는 법안 처리를 막고자 무제한 토론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identity(아이덴티티)[명사] 정체성, 신원, 동일성

박근혜 대통령 선거를 일선에서 도왔던 인사가 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습니다. 제1야당 대표를 지냈던 인사는 당을 떠나서 창당하고, 다른 당에 합류하기도 합니다. 이 정당이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을 듯한 정책이 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 공약으로 나옵니다. 대통령에게 밉보인 여당 중진 한마디는 야당 국회의원 한마디보다 독합니다.

같은 당 소속 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중단할 때는 외면하거나 거들었던 분들이 저마다 무상급식을 지원하겠다고 나섭니다. 국회의원 후보 한 명이 없는 도시를 만들고 멀쩡한 행정구역도 바꾸겠다고 합니다. 진행자 '흙장난'이 '정체성'을 들고 나온 이유입니다.

진행자 '청보리'는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게 정체성 아닌가"라고 되묻습니다. 오랜 역사를 거쳐 정당 정치가 자리매김한 외국과 달리 당명조차 몇 년 붙들지 못하는 국내 정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청보리'는 "그렇게 자주 바뀌는 게 정체성 아니냐"고 다시 묻습니다.

정체성에 어긋난 정치 행위를 이야기하다 보니 정체성에 얽매여 오히려 세련되지 않은 정치 행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방송에서는 '엄격한 정체성'과 '느슨한 정체성'으로 얘기해봤습니다. 뭐가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kids(키즈)[명사] 아이들

4·13 총선에 나선 오태완(진주 을)·최구식(진주 갑)·윤한홍(창원 마산회원)·조진래(밀양·의령·함안·창녕) 예비후보는 '홍준표 키즈'로 묶입니다. 예비후보 등록 전 이들이 거쳤던 경남도 직책을 보면 이렇습니다. 오태완 정무특보, 최구식 서부부지사, 윤한홍 행정부지사, 조진래 정무부지사 등입니다. 그러니까 예비후보들 배경은 경남도, 즉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됩니다. 성적은 별로입니다. 윤한홍 예비후보만 경선 경쟁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을 뿐 나머지는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 키즈'는 경남에서 유난한 현상이 아닙니다. 당장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는 '박 대통령 키즈'를 자임하고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에 기대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현실적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국회의원은 의원 한 명이 '입법기관'입니다. 국민만 그 위에 있을 뿐 어떤 권력도, 어떤 유력 정치인도 그 위에 설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분이 스스로 '키즈'를 자임하는 것은 우습지 않습니까? '권력의 키즈'가 돼 출마 기회만 얻으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일까요?

그렇다면 그런 '아이들'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는 또 어떨까요? 그런 후보에게 '키즈'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자존심을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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