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2) 남해군 창선면 이창희·김석순 부부

남해군 창선면 대곡마을.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새로운 인생을 즐기는 부부가 산다. 손수 집을 짓고 1년에 1000만 원씩, 1억 원이면 10년은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귀촌했다는 부부. 농사를 지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이들은 요즘 고사리와 고추농사 재미에 빠져 있다. 이창희(75)·김석순(66) 부부가 주인공이다.

"아침에 일어나 문 열고 나가는 순간 상쾌한 공기가 얼굴에 닿으면 나도 모르게 '아 잘 왔다'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 우리 둘만 생각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지. 물론 바쁘면 열심히 일하기도 하지만 어떨 땐 우리 식구(아내)한테 '오늘은 쉬고 내일 하지 뭐' 그런다. 나이 들어 일을 일처럼 하면 농촌에서 생활 못해."

완연한 봄날씨가 느껴지는 3월 중순 이창희 씨가 반갑게 맞으며 귀촌 생활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처음에 뭘 심고 얼마 안 돼 싹이 올라오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도 되는구나'하고 놀랐죠. 밭에서 식물과 대화를 합니다. 싹이 올라오면 '네가 날 귀여워해 줘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꽃이 피면 꽃피는 대로 반갑고 즐겁습니다. 열매 맺고 수확할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죠." 아내 김석순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강정을 내놓으며 말을 받는다. 첫 마디에서 부부의 생활모습이 전해진다.

◇손에 흙 묻힐 일 없을 거라 여겼던 귀촌

김 씨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기 들어올 때만 해도 농사 '농' 자도 몰랐습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파 1000원어치만 사면 한 달 먹는다. 그런데 내가 왜 손에 흙을 묻힐 거냐'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까 일을 안 하면 안 되겠습디다. 심심하고 외로웠죠. 일이 친구가 되고, 밭이 놀이터라 생각하니 일이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둘이 같이하니 재미도 있었죠. '나도 이런 걸 해냈다'는 자부심, 내가 농사지은 것을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팔 수 있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설렜습니다."

"첫해 고사리를 꺾어 팔았더니 700만 원이라는 수익이 올라오더라고. 이렇게 재미있고 수확의 기쁨까지 누리는데 뭣 하러 돈을 까먹는 생각을 했을까 싶었지. 자신감도 넘쳤어. 70 넘은 내 인생에서 온갖 선택의 기로가 있었지만 남해 귀촌 결정이 최고로 잘한 일이었어. 딸 둘에 아들 둘, 4남매를 낳아 다 출가시켰는데 못 살고 생활에 허덕이면 눈에 밟히겠지만 부모에게 의지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크게 걱정 안 해. 애들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길 오는데 여행 오는 기분이라 하더라고."

"하루는 딸아이한테 친정이 시골이어서 한 번 오려면 번거로울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죠. 그런데 전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여행가기 전 계획하는 과정이 즐거운 것처럼 남해에 간다는 생각에 설렌다고 하더군요. 손주들도 여기 오면 아무리 뛰어다녀도 꾸중하는 사람이 없으니 좋았겠죠. 오면 안 가려고 할 정도입니다." 김 씨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창희·김석순 부부가 집앞 나무에 핀 봄꽃을 살펴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여행 좋아하던 부부, 남해 섬을 뒤지다

이 씨는 부산에서 산업가스 충전공장을 운영했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이 씨는 어릴 때 부산으로 와 55년을 살았다. 그런 이 씨가 귀촌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내의 강압(?) 때문이었다고 했다.

"공장을 운영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귀가 잘 안 들리더라고. 대학병원에 10일 정도 입원까지 하게 됐어. 그런데 교수가 한 번 더 충격받으면 영영 안 들릴 수 있다고 겁을 주더라고. 그런데 겁은 우리 식구가 나보다 더 먹었어. 부산 있으면 애들한테 잔소리나 하고, 공장 일에 신경 써야 한다고 떠나자고 했지."

부부는 차 트렁크에 버너와 코펠을 싣고 다니면서 정자나 경치 좋은 곳이 보이면 그곳에서 밥을 지어 먹을 정도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귀촌지로 하동 섬진강변을 훑었다고 했다. 하지만 땅값이 너무 비싸 무리였다. 그러다가 남해까지 오게 됐으며, 섬 구석구석을 돌다 대곡마을 경사진 이 땅을 발견하고 사 집을 지었다. 그게 2011년 6월이었고, 그해 12월 부산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이사를 했다.

"처음엔 집을 찾았지. 최소한 한 300평 정도 되는 터에 집도 있고, 텃밭도 있는 그런 곳을 원했지. 그런 집이 잘 없더라고. 여긴 299평인데 텃밭은 만들기로 했다가 집안에 흙만 묻혀 들어오겠다 싶어 텃밭 대신 잔디를 심어버렸지."

이 씨는 집도 직접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비용은 많이 들이지 않고 황토집을 지었단다. "경주 개량한옥학교에 가서 8주 동안 교육을 받았어. 같이 교육받은 동기랑 집을 지었지. 남에게 맡길 경우 황토집을 지으려면 최소한 평당 400만 원 이상 든다는데 이 집은 240만 원 정도 들었어. 1·2층을 합쳐 58평인데 너무 커. 손주들이 뛰어다닐 땐 좋은데 우리 식구하고 있을 땐 내가 욕심을 너무 부렸다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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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마을 홍보 앞장 "이젠 대곡마을 주민"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현관 앞이 소란스럽다. 마을 어촌계장 부부가 이 씨를 찾아왔단다. 마침 주민들과 소통에는 문제가 없는지 물어볼 참이었는데 잘됐다.

박진갑(57) 어촌계장은 "보시다시피 이 형님 연세도 있고, 참 점잖습니다. 사실 다른 동네 이야기 들으면 귀촌하신 분들과 말썽이 생긴다고 합디다. 그런데 형님과는 그런 일이 없어요.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시골이 좋아 살려고 왔는데 저희도 도와드려야지요. 우리 마을엔 객지에서 온 사람이 몇 분 계신데 다들 사이 좋게 지냅니다."

듣고 있던 이 씨가 말을 거든다. "사실 어촌계장이 체험마을로 개발해 보려고 하는데 홍보 좀 해달라고 왔어. 이 동네가 다른 곳보다 주민 수는 적지만 조개나 우럭 등 어자원이 풍부한 동네야. 처음 개발하는 체험마을이니 다른 곳보다 나을 거거든. 다음에 한 번 찾아와 우리 마을 홍보기사 좀 써 줬으면 좋겠어. 꼭." 이 씨의 말에서 대곡마을 구성원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식구 말 듣길 정말 잘했어. 여기 와서 귀도 좋아졌고, 이젠 아프던 다리도 나았어. 매년 정밀검진을 받는데 작년엔 이전보다 더 건강이 좋아졌더라고. 부산에 살 때도 헬스장 다녔는데 그때보다 근육도 늘고, 폐활량도 커지고 비형간염 항체도 생겼어. 요새는 시골생활이 몸에 익었어. 이 나이에 더 힘든 농사는 못하지만 비가림시설을 해 고추농사를 해볼 계획이야."

올해는 900평 외에 3000평을 빌려 고사리 농사를 짓겠다는 이 씨는 '식구' 손에 흙 덜 묻히게 하려고 일꾼을 사서 일할 생각을 한다. 70에 귀촌해 황혼을 보내려던 이 씨가 '고사리'를 만나 오히려 청춘을 향해 거꾸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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