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 발 묶더니 이젠 나가라 등 떠밀어" 고향 지키는 김성수 대책위원장

김성수 위원장은 올해 55세다. 그는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위에서 생애 대부분을 살았고, 1983년 관광진흥법에 따라 재산권이 제한된 기타시설지구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시는 그와 이웃을 떠나라고 하지만 그는 "떠날 수 없다"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집은 공사가 한창인 저 유명한 경남 통영 스탠포드호텔 공사 현장 바로 아래에 있다. 

큰발개마을은 절경을 낀 그냥 시골마을이었다. 보상 예정지 중 제일 넓은 터가 120평 정도로 그냥 소시민들이 사는 마을이기도 했다. 10~30평 정도 땅 위에 조그만 집을 짓고 사는 시골 촌락이었다.

통영시는 2013년 이후 스탠포드호텔이 들어선다며 마을 보상과 함께 수용을 시작했다. 이후 떠난 사람이 있고, 억울하다는 사람이 있고,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1대 대책위원장은 보상과정에서 가장 먼저 보상을 받아 가장 먼저 떠나버렸고, 2대 위원장은 3개월 하고 떠났다. 이어 주민 추천으로 그는 2년째 3대 위원장이 됐다.

호텔 유치 전 큰발개마을은 60가구 정도가 있었지만 3월 현재 23가구가 버티고 있다. 이들 23가구는 대부분 수 대에 걸쳐 살아온 마을 토박이다.

"내가 1원을 더 받으면 동네 분들도 1원을 더 받게 하겠다, 이렇게 23가구와 버틴 3년이란 세월이 보통 세월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면 통영시가 정해 이주를 시키든지, 호텔 아래에 활용도가 적은 마을 한쪽 땅으로 옮겨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정도껏 현실 보상을 말하기도 한다. 김 위원장은 "직접 집을 사 들어온 주민이 있었는데 통영시 보상은 집을 산 가격보다 많이 낮았다. 같이 붙은 땅도 가격 차이가 큰 경우도 있었다. 수긍할 수 없는 게 한둘이 아니다"고 밝혔다.

수십 년 지켜온 고향마을과 호텔 공사장을 가리키는 김성수 대책위원장. /허동정 기자

그는 시와 대치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점점 독해지고 있다고 했다. 수개월 전부터 통영시청 홈페이지 '통영시에 바란다'와 국민신문고 코너에 마을 현안과 개선점, 의문점 등을 지금까지 모두 250건 이상 올리고 답변을 받았다.

주민들이 이러는 이유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이런 것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알리는 것 자체가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주민들 앞에서 '강제수용을 하겠다'고 밝힌 김동진 통영시장을 불신했다. 그는 "스탠포드호텔 기공식에서 김 시장은 절규하는 우리를 향해 '흥이 난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마을과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했다.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보상을 수용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지만 주민들이 하나둘 보상을 받을 때는 맥이 풀렸다.

현재 통영시는 강제수용을 하지 않고 합의 도출 후 수용한다는 견해다. 그리고 아직 보상을 받지 않은 가구에 대해 첫 번째 감정평가를 수용하지 않으면 두 번째 감정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하고 있고, 주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토지 감정평가 금액은 1차 감정평가에 따라 책정된다. 2차는 은행이자 등을 포함해 3~5% 정도 올린다고 알고 있다. 2차 감정평가를 받으면 강제 수용에 들어가는 법적 근거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받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큰발개마을은 1971년 이전부터 재산권 행사를 못 하고 살았다. 마을 밭이 많은 산 5번지 일대도 개발제한구역에서 오래전 풀렸지만 보존녹지로 묶이면서 또다시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다. 김 위원장은 "통영시가 시골마을인 그 상태 그대로 보상할 테니 나가라고 하는 것"이라며 "이런 것이 서럽고 억울해 토박이 23가구는 끝까지 버틴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남은 분들은 대부분 고령이다. 수몰민과 비슷한 처지다. 우리는 보상이 아니라 집단이주를 시켜달라고 말한다. 마을 분들과 함께 생을 마치길 바라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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