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번째 서해 상공을 지난다. 겨우내 하얀 생명 키워낸 강(江) 뿌리가 붉다. 봄의 태혈(胎血)이 섬 마당에 이르자 바다의 산통이 절정이다. 이 길, 독수리 따라 가는 서쪽 하늘은 여전히 누를 황(黃)인데 지금은 붉은 강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시간.

내가 사는 석가장(石家庄)은 하북성(河北省) 성도(省都)로 인구 1100만의 대도시이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특별히 내 세울만한 게 없다보니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도시였는데 몇 년 전부터 석가장 공항을 통해 태항산('太行山'이라 쓰고 '태항산'이라 읽는다)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석가장은 지금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데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공사장 가림 벽에 쓰여 있는 '중국의 꿈, 나의 꿈(中國夢, 我的夢)'이란 글귀를 만나게 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이 단순한 글귀에 21세기 중국의 야망이 숨어있다. 20세기 후반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슈퍼 파워를 축으로 굴러가고 있다. 서구 언론들은 세계은행 보고서를 근거로 2020년이 되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9조 7000억 달러인데 비해 중국은 9조 8000억 달러에 달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다. 2200년 전 진(秦) 왕 영정이 꿈꿨던 만년 제국, 즉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를 여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 그 꿈은 출근 길에 만나는 익숙한 이웃처럼 가까이 와 있다.

이 기회의 땅에서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한국의 혼을 심는 일은 가슴 뛰는 일이다. 아직은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 나라, 불어 터진 면을 앞에 두고 스승이 젓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리는 제자들, 그들이 머잖아 G1이 될 중국의 미래 지도자들이다. 공자학원이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동안 우리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발명품을 앞세워 대륙의 심장에 한국의 혼을 심고 있다. 나의 꿈은 중국 문화에 한국 문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동북아 문화로 세계 속에 한국의 혼을 심는 것이다. 21세기 세계 질서를 이끌어 갈 나라에서 우리 문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은 중국의 역사가 부흥하는 만큼 한국의 역사도 함께 부흥한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의 꿈은 나의 꿈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접시 닦기와 채소 장사로 시작되었지만 다가올 팍스 시니카 시대에는 문화적 선구자들이 있어 우리의 꿈을 이루기도 쉬울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바와 같이 지구촌의 기운이 동북아시아로 몰려온다는 21세기가 깊어질수록 중국의 꿈과 나의 꿈도 함께 깊어질 것이다.

/김경식(시인, 중국 하북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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