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 '비움'에 맞춰 탑 이전 추진…기념사업회 반발·대안 제시 "민중 투쟁사 두루 아울러야"

진주시가 진주대첩 기념광장을 추진하면서 예정지 안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이하 형평탑) 이전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시가 기념탑 이전을 요구하는 이유는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사업 때문이다. 시는 진주성 촉석문 앞 일명 '장어 거리'를 철거하고 이곳에 2만 5000㎡ 규모의 진주대첩 기념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시가 추진하는 진주대첩 기념광장은 지난 2007년 시작해 현재 공정이 80% 정도이며 올 6월쯤 부지 보상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10월쯤 착공하고 2018년 10월 준공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되새기는 공간이 없다는 여론에 따른 것으로, 진주대첩 역사성 제고와 호국충절 진주의 얼을 되살리고 첨단산업 문화도시로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추진된다.

시 관계자는 "광장의 기본 콘셉트를 '비움'으로 잡았다. 성격에 맞지 않는 기념물 등은 이전할 예정이다. 형평탑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주성 촉석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김종현 기자

하지만 형평탑을 세운 형평운동기념사업회(운영위원장 신진균)는 이전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시민 1500명 성금으로 세운 형평운동기념탑 = 형평운동기념탑은 1923년부터 진주에서 일어난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 운동을 기리고자 지난 1996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1500여 명의 진주시민 성금으로 현 진주문화원 옆에 세웠다.

원래 형평사 창립 축하식이 열렸던 옛 진주극장 앞에 세우려 했지만 부지가 협소하고 지가도 비싸 지금의 자리로 변경됐다. 비록 외성이긴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진주성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백정들의 한을 달래주는 의미도 있었다.

신진균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은 "진주정신 근거의 하나인 형평운동기념탑이 쫓겨날 운명이다. 진주시가 이전을 주장하는 논리로 광장 기본 콘셉트가 '비움'의 광장이라고 한다"면서 "'비움'이라는 콘셉트가 특정 상징물이 들어가야 한다는 여러 단체의 주장을 무마시키기 위한 명분용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어떤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은 원래 있었던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그것이 장소성이고 그 자체가 역사다. 지금의 형평탑은 성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백정들의 피맺힌 한이 서려 있고, 그것을 달래고자 한 진주시민들의 거룩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을 구실로 형평탑을 진주성 밖으로 내치는 것은 백정들의 영혼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주대첩 기념광장 아니라 진주역사 광장 돼야" = 아울러 신 운영위원장은 근본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진주대첩 기념광장이라는 이름에 형평탑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여기에 왜 진주대첩 기념광장인가라고 반문하고 싶다"면서 "진주성을 상징하는 것은 진주대첩만이 아니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 1895년 이후 전개된 항일의병투쟁, 무엇보다 진주성을 터전으로 둔 수많은 백성의 삶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진주대첩 기념광장이 아니라 진주역사(문화)광장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진주정신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이 상징물로 들어가야 한다. 진주성 전투,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을 모티브로 한 상징물을 배치하면 반침략-반봉건-평화와 인권이라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공간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신 운영위원장은 "형평탑의 단순한 이전은 안 된다. 만약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형평역사공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기념사업회와 진주시가 염두에 둔 이전 장소는 새벼리 석류공원 옆에 있는 형평운동의 아버지 강상호 선생 묘역 주변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주와 토지 보상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시는 일단 형평탑을 이전할 정도의 부지만 확보하고 차후 형평역사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시와 기념사업회는 최근 만나 서로 입장을 확인했다. 양측의 견해차가 아직은 남아 있어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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