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도 꿈을 꿀 수 있도록 "내 기부가 나눔문화 확산에"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소년은 이제 자동차 부품업계 숨은 강자로 꼽히는 기업체 대표가 됐다. 나아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지난 1월 13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기부를 약정했다. 67번째 경남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황정규 ㈜창일기계 대표이사. 그는 "미래세대가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기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마냥 기계가 좋았던 소년 = 황정규(67) 대표는 1949년 함안군 군북면 모로리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비교적 농사를 많이 지으신 덕에 황 대표는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 1월 67번째 경남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황정규 ㈜창일기계 대표이사.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시골에서는 그나마 여유가 있는 집이었어요. 그래서 형제·자매들도 그럭저럭 다 공부를 했고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 기계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전거부터 크게는 발동기까지 뜯어서 고치고, 주변에 보이는 기계 분해해서 구조를 파악하고 그런 것이 취미였어요."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꿈을 이루고자 기계공학도의 길을 가게 된다.

"군북에서 초중학교 나오고 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재수를 해서 동아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어요. 참 잘 선택했죠. 저는 공고 출신인 데다 어려서부터 기계에 취미가 있었으니 그들과는 출발선이 달랐죠. 게다가 저는 수학을 참 잘했어요. 대학 4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삶에 자신감을 찾았죠. 우수한 성적 덕에 졸업 후에는 부산에 갓 생긴 조병창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조병창은 무기, 탄약을 제조 수선하고 저장, 보급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병역특례로 5년간 근무했어요. 회사를 운영할 기틀이 될 기술을 여기서 배웠다고 해도 될 겁니다. 이곳에 다니면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집사람을 중매로 만나서 29살에 결혼도 했습니다. 아무튼 조병창에 있으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많이 생겼어요. 허허."

복무를 마친 그는 곧장 창원에 있던 현대양행에 취직하게 된다.

"조병창에 있는 동안에 창원공단이 막 들어섰습니다. 조병창 나와서는 현대양행에 입사를 했어요. 지금은 두산중공업과 볼보로 나누어졌는데 현대양행은 창원공단의 대표적인 대기업이었죠. 이곳 중장비 분야에서 근무하다 동양기계라는 회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통일중공업을 거쳐 지금 S&T중공업 모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여기서 트랜스미션을 생산하는 일을 했습니다."

◇기술과 신뢰로 난관을 넘고 = 대기업에 입사해 일했지만 그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해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1982년 34살 때 일이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제가 부품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보람을 별로 못 느꼈죠. 그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죠. 허허∼. 처음에는 양덕동 고속버스터미널 뒤편 제지공장 자리에 있던 창고에서 직원 두 명과 시작을 했습니다. 트랜스미션 톱니바퀴 가공 전 단계의 부품을 깎아서 동양기계에 납품했어요. 본격적으로 사업이 성장한 것은 조병창에서 배운 기술과 노하우를 자동차 부품 생산방법에 접목해 경쟁력을 높이면서부터입니다. 기아자동차와 거래하면서 생산 납품량이 대폭 늘었어요. 그래서 1985년에는 공장을 봉암공단으로 확장 이전했다가 1988년에는 지금 여기 팔룡동 차룡단지에 1·2공장을 세워 옮겼지요."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창일기계 또한 IMF 외환위기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

"저희 주거래업체가 기아자동차인데 IMF 외환위기 직전에 부도가 나죠. 물량이 끊기니 부도는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저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용 덕입니다. 저는 애초부터 어음을 발행하지 않았어요. 수금할 돈은 못 받았지만 돌아올 어음이 없으니 한결 견디기 가벼웠죠. 오히려 우리가 힘드니까 거래하던 업체들이 외상으로도 주더라고요. 근근이 생명을 연장해 나갔고 결국 기아차를 현대가 인수하면서 저희도 회생하게 됐습니다."

창일기계의 주력 생산품은 엔진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등속조인트 어셈블리 구성품인 이너 레이스와 스파이더다. 정밀도와 내구성이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창일기계는 이 부품을 생산하는 '스파이더 연삭용 주축센터'와 '스파이더 트리니언 타원 연삭기'를 직접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뛰어난 기술력 덕에 창일기계가 생산하는 제품은 ㈜위아에 납품되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공급될 뿐 아니라 외국 자동차 회사에도 수출되고 있다. 창일기계는 팔룡동 1·2공장에 직원 60여 명이 근무하며 기술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난해 매출액 180억 원에 이르는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미래세대가 행복한 세상을 = 황 대표는 출신학교 장학금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왔지만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을 바꿨다.

"주변에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사람이 3∼4명 됩니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라 보죠.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익명으로 하려고 하다가 실명을 밝히고 기부를 했습니다. 십시일반이라고 나눔 문화는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도 오래전부터 나이가 들면 복지시설을 설립하려고 알아봤는데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그래서 4∼5년 전에 아너소사이티 기부를 마음먹었죠. 가입을 앞두고는 내가 살아온 삶을 쭉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허허∼. 그동안 주변 친지와 지인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나 되돌아보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겼습니다. 허허∼."

그는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에 대해 후손들이 행복한 나라가 되길 바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저는 많은 도움을 받아 제 꿈을 이루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참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자리도 없고 세상은 더 양극화돼 가고, 나라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그런데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정부가 다 부담하는 것은 우리 미래 세대에게 그 짐을 떠안기는 것과 같죠. 그러니 나눔 문화가 확산하고 자리를 잡아야죠. 돈이 적은 사람도 재능을 나누거나 봉사활동을 하면 되고요. 저도 나눔에 동참하고 나니 마음도 뿌듯하고 편해지고 더 행복해지더라고요. 정말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동참을 권유합니다. 저도 또 계기가 된다면 더 나눌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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