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래길에서사부작]⑤ 2코스 마을 고샅고샅
정박한 배 묶어두었다던 화계마을의 큰 느티나무
이제 선착장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을의 기둥 같은

앵강만은 남해섬 남쪽으로 움푹 들어간 바다다. 이동면, 상주면, 남면 9개 마을을 두르고 있다. 항아리가 누워있는 것 같다 해서 '앵강'이라 한다는 말도 있고 앵강만의 구슬픈 파도소리가 앵무새의 노랫가락 같아 '앵강(鸚康)'이라 부른다는 설명도 있다. 남해바래길 2코스는 이 앵강만을 끼고 돈다.

◇홍현1리마을과 석방렴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한 바래길 2코스가 처음 만나는 마을이 홍현이다. 무지개 홍(虹)에 고개 현(峴), '무지개 고개'란 뜻이다. 홍현 마을 뒤편 설흘산과 도성산의 산세가 무지개처럼 생겼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바로 바닷가 도로를 걷게 된다. 길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갈 때까지 250여 m가 모두 방풍림으로 이어져 있다.

바닷가는 몽돌해변이다. 그런데 해변을 가득 채운 건 자갈이 아니라 커다란 몽돌바위다. 홍현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바위를 바닷가에 쌓아 석방렴(石防簾·돌발)을 만들었다. 석방렴은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문이 되면 갇히게 한 원시적인 어로 방법이다.

◇숙호숲과 전복양식장

홍현마을에서 나온 바래길은 잠시 도로를 따라간다. 그러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서는데 그곳이 숙호숲이다. 숙호숲 곁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전복양식장이다. 양식장에서 1년 정도 배양한 전복은 다시 홍현 앞바다 양식장으로 보내 3년 이상을 키운다. 특이하게도 이 법인에서는 실제 제주 해녀를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해녀들은 양식장 전복뿐 아니라 앵강만 주변 마을에서 자연산 전복도 수확한다. 그래서 양식장 한편에 있는 판매장에서 자연산 전복과 멍게, 해삼 등을 살 수 있다. 양식장 건물 2층에는 법인이 운영하는 '남해자연맛집'이란 전복 전문 식당이 있어 신선한 전복 요리를 바로 맛볼 수 있다. 숙호숲은 자잘한 몽돌이 깔린 데다 울창한 송림이 200m 정도 이어져 있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월포·두곡해수욕장과 고진성

숙호숲에 이어 바래길은 작은 등성이를 하나 넘어 월포마을을 만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백사장은 바로 옆 두곡마을 해안과 이어지며 900m나 계속된다. 바로 월포·두곡 해수욕장이다. 긴 해변을 따라 정렬한 소나무들도 장관이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 꼭두방이라는 바위섬이 있다. 콘크리트로 육지와 연결됐는데, 뒤로 돌아가 보니 제법 덩치가 큰 바위섬이다. 낚시터로 유명하다.

월포·두곡해수욕장 끝 바위섬 꼭두방

월포마을은 마을 생김새가 음력 초열흘 초승달 모양을 닮았다 해 옛날에는 순월개라고 했다. 두곡마을은 옛날 쇠를 굽던 곳이 있어 전동(煎銅)이라 불렀다고 기록은 전한다. 바래길에서 두곡마을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낮은 등성이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쌓은 고진성(古鎭城) 자리다. 지금도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미국마을과 용문사

월포·두곡해수욕장을 거친 바래길은 바다를 벗어나 호구산자락을 살짝 걸친다. 그리고는 미국마을을 만난다. 독일마을에 이어 남해군에서 추진한 또 하나의 이주마을이다. 주민들 말로는 2016년 3월 현재 22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생김새는 단출한데, 미국식 건축양식으로 지은 예쁜 집들이 마을 한가운데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펜션을 하는 곳이 많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묵어볼 만하다.

바래길은 미국마을을 관통한 도로를 따라 바다로 이어진다. 반대로 산 위로 올라가면 용문사 주차장이다. 조선 현종 원년(1660) 백월대사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운 보광사의 사운이 기운 것을 보고 지금 자리로 옮겨 용문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 근거지 노릇도 했다. 대웅전, 명부전 같은 건물과 국가 보물 1446호 괘불탱화 등 문화재가 16점이나 된다. 용문사 뒤편 녹차밭은 주변 소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럽다. 주변에 남해군이 조성한 자생식물단지 '3자림(유자·비자·치자)'이 있다.

◇화계마을과 배선대

바래길은 화계마을로 이어진다. 지나다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500여 년 전 정박한 배를 묶어두던 나무라고 한다. 지난 1982년 남해군 보호수 12-34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선착장 주변에 '배선대'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배선대는 '배를 대는 곳'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화계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어선들이 선창에 일렬로 늘어서 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화계 배선대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매립을 하면서 선착장이 사라졌고, 마을 사람들은 선착장 자리에 '배선대'라고 적은 비석을 세웠다. 지금도 마을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 안쪽에는 미술가 길현(48)이 운영하는 길현미술관도 있다. 옛 성남초등학교를 고쳐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자리는 조선시대 곡포성이 있던 곳이다. 화계마을의 옛 이름이 곡포(曲浦)다.

◇신전·원천마을과 앵강다숲

화계마을 해안도로는 그대로 신전숲으로 이어진다. 참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편백, 소사나무 등 18종의 나무가 너비 200m, 폭 70m 숲 속에 가득하다. 이전에는 군부대가 있어 출입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남해군이 휴양촌과 체험촌을 조성하고 앵강다숲마을이라 이름 붙였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가 있어 바래길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옆 남해약초홍보관에서는 쑥뜸 무료 체험을 할 수 있고, 3층에는 카페도 있어 차도 한 잔 할 수 있다.

신전숲에서 바닷가를 계속 따라가면 원천마을이다. 옛날에 이곳에 원(院·나라에서 만든 일종의 여관)이 있었는데, '원이 있던 냇가 마을'이란 뜻에서 마을이름이 원천(院川)이 됐다. 원천마을 앞 해안을 따라 아름드리 느티나무, 포구나무가 500m가량 이어지는데, 풍경이 의외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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