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1) 고성 영오면에서 부추 농사 짓는 송창호 씨

오랫동안 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손마디가 굵고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의 농부'를 떠올렸다. 고성군 영오면에서 하우스 부추농사를 짓는 송창호(52) 씨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20년 농사지은 50대 농부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의 외모였다. "진짜 직접 농사짓습니꺼?"

◇남들 보기에 1년 중 절반은 쉬는 부추농사 = "다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딸아이가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는데 학부모 모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직업이 뭐냐고 하기에 농사짓는다고 했죠. 그런데 아무도 내 말을 안 믿더라고요. 그래서 '모 기관'에 근무한다고 했더니 그 말은 믿더라고요. 하하."

송 씨의 비닐하우스에 들어섰다. 스프링클러를 통해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는 부추가 참 싱싱하다. 초록의 싱그런 부추 들판이 펼쳐진다. 그 길이만도 족히 100m는 돼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수확합니다. 한 차례 부추를 베어내고 30일 정도 지나면 다시 자라죠.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됩니다. 그렇게 여섯 번 정도 수확합니다."

송창호 씨./김구연 기자

1년 중 절반만 부추농사를 짓는다는 말이다. 부추농사 외에 또 무얼 심는지 물었다. 송 씨의 답은 의외다. "놀아야죠. 1년 중 절반을 힘들게 농사지었는데 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설마 그렇겠냐 싶어 송 씨를 쳐다봤다. "맞습니다. 정말 부추농사만 짓습니다. 수확을 끝낸 부추밭은 11월이 될 때까지 관리만 하고 그대로 둡니다. 11월이 되면 웃자란 부추를 베어내고 새로 기르게 되죠. 한 번 모종을 옮겨 심으면 3년 동안 이 시스템으로 가게 됩니다."

송 씨는 '논다'라는 표현이 외부 사람들의 눈에 비친 모습이라고 했다. 그들 눈엔 부추를 방치하듯 내버려두고 있으니 노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송 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쉬운 농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다른 시설하우스보다 수익도 낫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왜 부추농사를 많이 짓지 않을까?

"보기보다 부추 농사가 까다롭습니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죠. 특히 겨울철 찬바람만 한 번 쐬면 부추 잎이 말라버립니다. 또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하루 만에 하우스 전체로 퍼져버리죠. 보기와 달리 나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작목입니다."

한 해 인근에서 딸기를 재배하던 사람들이 송 씨의 성공 모습에 부추를 심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추농사를 지어보니 쉽지 않아 모두 실패하고 다시 딸기를 재배한단다. 그만큼 환경관리가 어려운 작목이라고 했다.

고성군 영오면서 부추를 재배하는 송창호 씨./김구연 기자

◇끈질기게 매달려 터득한 기술 마침내 '상품화' = 통영 사량도가 고향인 송 씨는 섬에 고등학교가 없어 통영으로 나왔다. 성인이 돼 군 제대 이후 부산에 살면서 결혼도 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실내장식 일을 했단다. 하지만 사업도 잘 안 됐고, IMF 외환위기 사태를 맞으면서 더 어려워졌다. 결국 1998년 8월 고성군 영오면 지금의 마을로 들어오게 됐단다.

"워낙 부산 생활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는데 지인의 소개로 이 마을로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죠. 시골 공동체에 낯선 이방인이 들어왔으니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겠지요. 다시 지인에게 부탁해 동네 사람들을 사귀게 됐고, 그분들을 따라다니면서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죠. 그분들처럼 처음엔 딸기와 호박을 심었습니다."

10년 가까이 그렇게 딸기와 호박 농사를 지어 나름 수익을 냈다. 하지만 송 씨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바로 '부추'였다.

"김해 대동에서 노지에 부추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산에 있을 때 알던 사람이었죠. 그분에게서 부추 농사가 해 볼만한 일이라는 걸 익히 들었습니다. 연료비 적게 들고, 한 번 심으면 3년간 이어 지을 수 있다고 해 견학을 가곤 했습니다."

부추농사를 짓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하다 진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최고영농자과정에 들어갔다.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부추농사를 지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12명이 모였다.

"정보를 공유하면서 하우스 반은 딸기를 심고 반은 부추를 심었습니다. 당연히 첫해는 실패했죠. 기술이 없다 보니 어느 정도 자라면 끝이 말라버려 상품성이 없었습니다. 재배기술을 배우고자 울산 포항 등지로 1년에 열 번 넘게 다녔습니다. 그곳 농민들에게 밥을 사 줘 가며 묻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전화를 해 기술을 익혔죠. 그렇게 3년 정도 매달리니 시장에 내다 팔 정도의 부추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됐다' 싶어 딸기 대신 모든 하우스에 부추를 심었습니다. 그게 10년 전쯤 일이죠."

◇섣부른 귀농귀촌, 행복한 미래 보장 못 해 = 그렇게 남들 보기에 '놀면서 농사짓는' 송 씨의 소득은 어떨까? 그는 "연간 매출이 3억∼4억 원정도 될 건데 그중 경비가 40%가량 들어갑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 인건비에 끊임없이 재투자를 해야 해 나머지가 모두 순수익이라고 하기가 뭣합니다. 분명히 딸기농사 때보다는 낫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송 씨 역시 대부분의 귀농인이 그렇듯 잘못된 정보에 현혹돼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말을 아낀다.

"귀농하려는 사람, 특히 시설하우스를 하려면 2~3년 전부터 견학을 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면 시작해야 합니다. 뚜렷한 계획 없이 시골에 들어가면 대부분 실패하죠. 그리고 귀농을 결심했으면 귀농지 특산물을 파악할 필요가 있고, 배워야 합니다. 만약 어떤 작목을 정해 그것을 재배하고 싶다면 그 작물을 생산하는 곳에 가서 반드시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역시 다른 귀농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아내 정유정(51) 씨와 약 9000평의 비닐하우스에서 부추농사를 짓는다는 송 씨는 올해 2000평 정도 재배면적을 늘릴 계획이다. 고성에 부추농사를 전파해 현재 17명이 부추작목반을 결성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송 씨가 너스레를 떤다.

"지금까지 군수 표창과 농촌진흥청장 표창은 받았는데 아직 도지사 표창은 못 받았습니다. 이만한 노력이면 선도영농인으로 도지사 표창 감이 안 될까요?" 송 씨의 표창 소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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