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아이와 가까워지니 어느새 물든 동심…<돌멩이야 고마워>책으로 펴내 "관념 벗어나 아이 눈으로 써야"

정년을 앞둔 초등학교 교장이 동시집 <돌멩이야 고마워>를 냈다. 평생 동심을 간직해 온 문인, 이동배(62·김해 삼성초등학교 교장) 시인을 만났다.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학교는 조용했다. 교장실은 더 그랬다.

이 교장은 명함을 건네며 오는 8월 김해를 떠나야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명함을 훑었다. 앞면은 '꿈나르미' 로고가 박힌 교육청 명함이다. 김해삼성초등학교 교장이라고 적혀 있다. 뒷면은 사단법인한국문인협회라고 크게 적혔다. 약력을 살펴보니 다양하다. '한국, 경남 문협 이사', '합천, 김해 문협 감사', '경남·진주 시조시인협회 회장', '섬진시조문학회장', '경남아동문학회 부회장' 등.

"나이가 드니 절로 직책도 높아지네요. 선생은 매번 근무지가 바뀌잖아요. 그때마다 지역 문협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교장은 시조시인이다. 1996년 현대시조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방과후 수업 문예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동시를 지은 이동배 교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그의 글쓰기 실력은 어릴 적부터 뛰어났다. 진주중·진주고등학교 시절 교내외 백일장을 휩쓸었다. 동아리 문예부장을 맡았고 고등학생 때는 진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글을 썼다. 개천예술제에 출전해 장원을 받기도 했다. '손'이라는 주제로 즉흥시를 써냈다. 대학에 가서도 교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학생 때 삼현여중 학교 신문 제작을 돕기도 했다.

"진주중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시를 썼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글 좀 쓰면 되겠다'라고 말씀해주셨죠. 권정호 전 교육감이 담임 선생님이셨죠. 칭찬과 인정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동기부여와 큰 자극이 됐습니다."

시인을 꿈꿨던 문학 소년은 가난했던 집안 사정 탓에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는 교대, 졸업만 하면 군대에 가지 않고 취업할 수 있는 초등학교 교사를 택했다. 문학은 돈벌이가 안 됐다. 그는 글을 쓰려면 우선 돈부터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첫 발령지는 하동 악양초등학교였다. 그는 교원예능경진대회에 나가서도 글쓰기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문학세계로 빠져들지는 않았다. 스스로 영감을 받지 못했다. 방황은 꽤 길었다. 하동에서 사천으로, 또 남해에서 진주로 학교를 옮기는 동안 그는 펜을 잡지 않았다.

"여러 사정으로 글을 쓰지 않았어요. 그러다 소중한 인연을 만납니다. 진주 평거초등학교 근무 시절 이문형 교사와 마주하죠. 그는 시조에 관심이 높고 좋은 시조도 많이 썼어요. 대화를 많이 나눴고 문학 이야기도 자주 했어요. 저에게 '옛날에 글 좀 썼다면서'라며 자주 물었죠. 그가 요즘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사실 이 교장은 갈증이 났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면서도 '등단을 한 선생님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각종 백일장에서 만난 심사위원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럴수록 인정받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때 동료 이문형 교사는 큰 힘이 됐다. 그가 쓴 시조 30편을 찬찬히 살펴보고 5편을 골라 '현대시조' 응모를 제안했다. 그 덕에 등단한 셈이다.

그는 어디서든지 문협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경남현대불교문인협회, 한국펜클럽에도 소속되어 있다. 여러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다 보니 연간 창작물 50여 편을 발표해야 했다. 다작의 비결이란다.

시조시인인 그가 동시에 관심을 둔 것은 초등학교에서 문예부를 만들면서부터다. 요즘 초등학교는 동아리 개념이 없다. 모두 방과후 수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방과후는 영어 등 학부모들에게 인기있는 수업으로 이뤄져 문예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교장은 직접 방과후 수업에 문예부를 넣었다. 김해 삼성초등학교에 문예부가 있는 것도 그가 만들어서다.

이 교장은 아이들을 지도했다. 직접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본보기로 지었던 동시가 <돌멩이야 고마워>로 묶였다.

"아이들을 가까이하다 보면 우리 선생들도 아이들과 같아진다는 말이 있어요. 어쩌면 '유치한' 어른들이지요. 시조 공부를 했기에 아동문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동시를 가르치다 보니 동시조도 썼죠. 동시를 쓰는 과정에서 정형화 형식을 갖추면 시조가 되거든요. 아이들에게 시를 보여주려고 쓴 게 엄청나더군요.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책으로 폈습니다."

<돌멩이야 고마워>는 1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꽃', 2부 '웃음꽃', 3부 '고향, 들판의 꽃', 4부 '혼자 핀 꽃'으로 나눠 64편의 동시를 담았다.

그는 요즘 동시가 어렵다고 했다.

"옛날 동시와 현재 동시가 달라요. 지금 동시는 어렵죠. 아이들 마음으로 아이들이 읽게끔 써야 하는데 너무 관념적으로 파고드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또 백일장 작품을 심사하다 보면 아이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작품이 많고요. 동시는 그 마음을 투영해야 하죠. <돌멩이야 고마워> 중 '돌멩이야 고마워'가 가장 애착이 가요. 요즘 아이들이 고마움을 잘 몰라요. 그래서 우리에게 늘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보자는 뜻에서 썼죠."

그는 훗날 자신이 쓴 글이 오랫동안 읽히길 바란다. 독자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런 마음에서 <돌멩이야 고마워>도 800권을 찍어 교육청에 기부했다.

"이제 곧 순수 문인으로 돌아갑니다. 고향 하동에서 시조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여러모로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겁니다. 벌써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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