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생존자 44명 중 도내 6명 거주...대부분 고령·지병으로 병원 생활
"굴욕적인 한일 합의 되돌리고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받아야"

"그래, 내가 그 미친년이다. 우짤래?"

영화 <귀향>에서 영옥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접수처가 있는 동사무소에서 신청을 머뭇거리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과거를 어떻게 밝히겠냐'는 공무원 말에 울분을 터트리고 만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2012년 제11차 일본국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이날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선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25년이 흘렀지만, 어떤 할머니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숨기고 싶은 과거다.

지난달 20일 기준 정부(여성가족부) 등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모두 238명. 올해 들어서만 지난달 15일 양산지역 최모 할머니에 이어 20일 김경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 생존자는 44명으로 줄었다.

생존 할머니 44명 가운데 경남에 6명이 거주하고 있다. 창원 4명·통영 1명·남해 1명이다. 서울(12명)·경기(12명)에 이어 경남에 세 번째로 생존 할머니가 많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시민모임 이경희 대표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공동거주시설이 있어 등록자 수가 많은 것"이라며 "평화의 우리집과 나눔의 집 등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중에는 고향이 밀양·양산 등 경상도 출신이 많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남은 일제 식민지배 시절 수탈과 억압 양상이 많았고, 위안부 피해자도 많았다. 이 때문에 도내에 위안부 피해자 지원센터나 일제강점기 역사관 등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지자체 관심이 뒷받침되지 않아 무산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애초 경남지역 위안부 피해 등록 할머니는 20명 안팎.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민간단체에서 시작된 위안부 문제에 정부가 뒤늦게 나서면서 초기 등록 자료 등 위안부 관련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할머니들 본적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르다 보니 정확한 자료는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처음에는 거주지가 중요하지 않았지만 정부 지원이 이뤄지면서 지역별 현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현재 생존 할머니들도 고령과 지병 등으로 한 해가 다르게 스러지고 있다. 경남지역 생존 할머니 6명도 건강이 좋지 않다.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으로 통영에서 사는 김복득(99)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신체적으로 많이 쇠약하지만, "내가 억울해서 일본한테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은 또렷하다. 남해에 있는 박숙이(95) 할머니도 한때 병원에 입원했지만 건강이 좋아져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 바깥 출입은 거의 못하고 주로 누워 계신다.

창원지역 김양주(92) 할머니는 당뇨 말기에 혈압도 높고 관절염이 심해 아예 걷지 못하는 상태다. 마산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김 할머니는 최근 치매도 심해져 사람들을 거의 못 알아본다고 한다. 나머지 창원지역 할머니 3명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 꺼리고 있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양산 최모 할머니도 가족들이 원치 않아 빈소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가운데 결혼한 분들은 한사코 공개를 원하지 않고, 가족 반대 또한 심하다"면서 "양자를 둔 할머니들도 있지만 대부분 외롭게 혼자 살아왔다"고 했다.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치료 간병비와 생활안정자금 등이 지원된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 대표는 "할머니들은 10대 나이에 속고, 빼앗기고, 학대당하는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고통스럽게 살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심리 상태가 굉장히 불안하고 굴곡져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 의심도 많다. 나를 또 이용하려고 하나 경계하고 모질게 굴어 자원봉사자나 간병인이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금전적 지원에 그칠 게 아니라 심리 치료를 비롯해 궁극적으로 할머니들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한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 이뤄질 때 풀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영화 <귀향>이 지난해 12월 한·일간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한 이후에 나왔기에 시기적으로 반갑다"면서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데, 이 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건 한·일 협상에 대한 국민의 반대 의사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국민의 힘이 남아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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