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사천시 동서금동 14통 이순애 통장

사천에는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수호천사가 있다.

그는 동서금동 14통 이순애(61) 통장이다. 이 통장은 43세 젊은 나이에 남편의 바통을 이어받아 통장을 맡게 됐다. 남편이 사업 때문에 1년 만에 통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18년 전 일이다. 하지만 이 통장은 통장보다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친구', '봉사의 달인' 등으로 유명하다.

통장을 맡으면서 독거노인을 돌보기 시작한 그는 30여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말벗이 되어준다. '밥 챙기 묵나요', '아픈데는 없고' 이 통장이 가장 먼저 묻는 말이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이들은 서로 사랑과 정을 느낀다. 이 통장은 이들에게 나이를 떠난 인생의 친구요 동반자인 것이다.

사천시 동서금동 14통 이순애 통장. 이 통장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에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장명호 기자

이 통장이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대가족이 모여 살았던 어린시절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 이 통장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조그마한 가게를 했는데, 불쌍한 사람을 보면 과자랑 돈 등을 나눠주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이 통장에게 나눔은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 통장을 맡은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길에서 만난 지인으로부터 감자 한 상자를 받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상자에는 달랑 감자 4개가 남았더란다.

이 통장은 "주위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지금까지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나 혼자 힘으로는 엄두도 못냈을 것"이라고 겸손해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전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80대 할머니가 혼자 살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집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아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이 통장이 직접 할머니 집을 찾아갔지만 역시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이 통장은 매일 방문했다. 결국 할머니는 3개월만에 문을 열어줬다. 할머니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전제품을 비롯해 칼, 도마 등 조리기구들이 이불과 함께 장롱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음식물이 냉장고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모두 썩어있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상한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면서 살아온 것으로 보였다. 순간 '치매구나'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한다.

이 통장은 할머니에게 병원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했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텨 장장 8개월만에 그 싸움을 끝냈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병원 입원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옆 환자에게 누명을 씌워 도둑으로 모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 하루에 한 번 이상 간호사들이 이 통장을 호출할 정도로 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이 통장은 할머니가 치료를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 할머니가 병원에서 사라져버렸다. 할머니 딸이라는 사람이 와서 모시고 갔다는데 병원에 남겨놓은 연락처는 불통이었다. 지금까지 방치했다가 이제와서 어머니를 모셔간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는 이 통장은 눈시울을 붉힌다.

그렇다고 이런 일들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막내아들이 중학교 3년 때 일이라고 했다. 길을 잃고 거리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택시기사에게 할아버지를 집에 모셔다 줄 것을 부탁하는 아들을 보며 이 통장은 '봉사하기를 참 잘했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 통장은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시의원 나오면 무조건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고 한다. 이 통장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내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이 통장은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동서금동 14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쉴 경로당이 없다. 쉼터라는 곳이 하나 있는데 공원 주차장 터에 지어져 있다. 쉽게 말하면 불법 건축물이다. 이 때문에 조만간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올해 사업으로 계획돼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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