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휘원 양 새벽 기차 타고 혼자 국회 방청…"정치는 남의 일 아니라 우리 일"

지난달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지글을 남겼다. '불쑥 의원실을 두드린 여고 2년 마산 소녀에게' 띄우는 글이었다.

은 의원은 지난달 24일 10시간 18분에 걸쳐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을 벌여 국내 '필리버스터' 기록을 갈아치웠다.

은 의원은 이 글에서 "며칠전 의원실로 불쑥 전화해 필리버스터 방청하고 싶으니 연결해달라고 했다면서요? 은수미 의원 하는 것 보고 감동 받아 국회에 가서 다른 의원님들 하는 것 봐야겠다 결심했다구요. 허가되자마자 오늘 새벽 기차 타고 혼자 왔다구요"라고 소개했다. 이어 "새벽 기차로 올라온 그대의 용감함과 순수함을 닮은 우리나라 만들게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우쳐줘서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요, 낯선 의원실 문 두드려줘서"라고 했다.

1.jpg
▲ 은수미 의원실 비서가 찍어 준 배휘원 양 모습.

은 의원실 문을 두드린 '마산 소녀'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모 여고에 다니는 배휘원(16) 양.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휘원 양은 정말 '불쑥' 필리버스터를 직접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국회의사당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밝혀온 딸의 결정에 휘원 양 부모도 흔쾌히 허락했다.

휘원 양은 스스로 방청 절차를 알아보고, 지난 26일 혼자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쯤. 서기호 정의당 의원과 김현 더민주 의원의 필리버스터 바통터치 순간을 지켜봤다.

"처음에 방청하려고 한 이유가 의원들에게 힘이 된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의원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고, 방청하는 사람이 많든 적든 계속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서기호 의원이 방청석에 눈을 맞추고, 방청객을 자주 언급하더라고요. 은수미 의원이 페이스북에 저한테 고맙다는 글을 써주셨고요. 의원의 그 눈빛과 글을 보고 조금 알게 됐어요.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건 우리를 위해서고, 그렇기에 어떤 사람에게든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구나, 도움까진 아니더라도 힘이 되겠구나, 뭐 그렇게 느꼈어요. 지친 의원들 보면 슬프긴 하지만,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한 사람으로서 의원들에게 힘이 될 수 있었다면 기쁘네요."

휘원 양은 청소년들이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어른들 또한 격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나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위 또래들이 뜻밖에 그런 쪽에 관심이 아예 없어서, 어느 순간 제가 설명하고 있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학생이라는 틀에 갇혀서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그런 얘길 해도 그런 걸 알아서 뭐하겠느냐는 반응이에요. 어른이고 애들이고요.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갖는 20대가 돼도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당연하게 되어가는 것 같은데, 정치는 정치인들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라는 걸 조금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나가서 시위하라는 게 아니잖아요. 테러방지법이란 게 뭐고, 찬성하고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필리버스터를 왜 하는 건지.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찬성할지, 반대할지는 자신의 판단이고요. 중요한 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거, 우리 일이니까 우리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으로 한 번씩 검색은 할 수 있잖아요."

휘원 양은 국회에 다녀온 소감을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국회를 직접 보고 온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의사당 밖 건물보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엄청나게 커 보였달까. 은수미 의원실 비서님이 자기도 같은 나이 딸이 있는데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서 저한테 '신기하다, 대단하다'고 말씀하시고 사진도 찍어주셔서 당황했지만, 덕분에 어려운 절차를 거쳐 현장을 보고 왔죠. 고맙습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테러방지법을 막고자 진행 중이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내리자 일부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1일 예고된 기자회견이 연기됐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