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만나다]김종덕 국제슬로푸드협회 한국협회 초대 회장

생명비용이란 게 있다. 음식비와 의료비를 포함한 비용이다. 여기서 음식비는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푸드 비용이다. 나는 음식비와 의료비 중 어느 곳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을까?

2000년 국내에 처음 로컬푸드를 소개한 김종덕(64·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국제슬로푸드협회 한국협회 초대 회장을 문득 만나고 싶었다. 페이스북에 '음식시민의 행동이 푸드시스템을 바꿉니다'라는 글을 709편이나 올렸기에 '음식시민'이란 단어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25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동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2월 29일(오늘) 34년간 몸담았던 경남대를 명예퇴직한다. 그가 명퇴를 선택한 이유는 국제슬로푸드협회 한국협회장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다. 그가 주장하는 음식시민이 되는 방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은 생명비용 중 식사비 20%, 의료비 80%를 쓴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식사비 90%, 의료비 10%를 쓴다.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낫다.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음식문맹에서 음식시민이 되도록 바꾸는 건 국가 프로젝트가 되고, 전세계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최근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초대 회장이 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슬로푸드 운동은 전세계 160개 국가에서 하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 음식운동이다. 10개 국가가 국가협회에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 5월 8번째 국가협회가 됐다. 우리나라 슬로푸드 회원은 900명이다. 한국협회는, 협회가 있고 지부가 있고 광역시 지부연합회가 있다. 협회는 지부나 연합회 슬로푸드 활동을 지원하고 운동할 여건을 만들며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하도록 도와준다. 2년에 한 번씩 슬로푸드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협회 한국협회 초대 회장은 2000년 국내에 처음 로컬푸드를 소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음식시민의 행동이 푸드시스템을 바꿉니다'라는 글을 꾸준히 올리며 '음식시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

-경남의 현재 슬로푸드 운동 상황은 어떤가?

"경남은 지부는 없고, 밑으로부터 연합회 만들자는 요구가 생기면 만들면 된다. 경상도는 상대적으로 슬로푸드 운동이 저조한 편이다. 경상도는 공업지역이고 상대적으로 농업 비중이나 농산물 비중이 낮은 것 같다. 지자체 관심도 낮다. 전북 완주(2008년 도입)와 강원도 원주는 아주 잘 되고 있다."

-로컬푸드, 슬로푸드 두 개념이 잘 구분이 안 된다.

"로컬푸드는 음식이고 슬로푸드는 철학이다. 슬로푸드 안에 로컬푸드도 들어간다. 슬로푸드가 지향하는 게 로컬푸드보다 넓다. 글로벌푸드의 반대 개념이 로컬푸드다. 글로벌푸드가 점점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대안으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연결된, 지역에서 소비하고 지역에서 돈이 순환되는 기본 정신이 담긴 음식이 로컬푸드다. 글로벌푸드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자가 가져가는 몫이 점점 줄어드는 점인데, 로컬푸드 시스템은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진다.

로컬푸드는 공간적 맥락이라면 슬로푸드는 시간적 맥락이다. 글로벌푸드는 시간적 맥락을 갖고 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음식이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의 반대 개념이다. 패스트푸드도 두 가지가 있다.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처럼 이미 만들어진 제품과, 공장이나 산업의 시간에 의해 생산되는 제품이다. 지금은 닭도 120일 키우던 걸 3주밖에 안 키우고 돼지도 18개월 키우던 걸 7개월밖에 안 키운다. 제철에 자연의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과 발효음식을 슬로푸드라고 한다."

-슬로푸드 운동이라 하면 단순히 그런 음식을 먹지 말자는 것인가.

"슬로푸드는 음식이자 철학이자 이벤트이자 네트워크다. 세 가지 측면이 있다. 굿(good)은 지역 향과 맛을 가지고 있고 건강에 좋고 맛있는 것. 클린(clean)은 친환경이라고 얘기하는 것, 자연의 질서에 반하지 않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 페어(fair)는 소비자로서 생산자의 수고나 노력들에 정당한 대가를 치른 음식을 일컫는다. 음식문맹자에게 교육이나 운동을 해서 음식시민으로 바꾸고, 음식시민들과 함께 로컬푸드시스템 만들기, 농업과 먹을거리 선순환 관계의 가치를 인식하게 하고 식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는 운동이다."

-이런 개념을 잘 모르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음식문맹자'라고 규정했다.

"글로벌푸드 시스템에서 소비자들은 전형적인 음식문맹자다. 싸고 맛있고(각종 첨가물, 싼 지방, 설탕 포함) 편리한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슈퍼마켓에 음식이 넘쳐나니까 음식 걱정 안 하고, 인스턴트 음식에 의존하니까 조리할 줄 모른다. 식품 산업의 '잇모어(eat more·많이 먹어라)' 마케팅에 놀아나는 사람들이다. 1+1에 빠져서 음식 소비를 하고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음식문맹자는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문제 음식이 확산되는 데 공범자 역할을 한다."

-슬로푸드시스템으로 바꾸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보나?

"농업 중심으로 가자는 건 아니다. 산업 이익 때문에 농업 자체를 희생시켜도 좋다고 여기는 생각엔 반대한다. 농업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산업적 이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도 지배하고 경제도 지배하고 있어서 시스템 변화가 쉽지는 않다. 1만 년 전에 농업이 시작됐는데 농업 때문에 도시가 생겨났고 국가, 근대, 자본주의가 생겨났다. 지금은 농업이 주변화돼 있다. 지속가능한 쪽으로 푸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인류 미래를 위해 농업을 지속시켜야 한다."

-슬로푸드(로컬푸드) 운동이 정착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공부문 역할이 가장 필요하다. 제대로 된 푸드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국가나 지자체의 의무다. 급식도 마찬가지다. 학교급식뿐 아니라 군대, 회사, 병원 급식에 로컬푸드를 사용하도록 하면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 소비가 늘어나고 농민들이 훨씬 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먹을거리 복지는 단체장 선호도에 따라 바뀌는 문제가 아니고 지자체 의무다. 예를 들면 경남도지사가 학생 급식을 중단한 것은 직무유기다. 무상급식은 의무급식이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하는 게 의무급식이다."

-경남지역에서 푸드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을 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

"먹을거리나 농업에 대한 얘기는 서울보다는 지역에서 해야 될 얘기가 많고 할 일들이 많다. 창원에 지부가 있다. 창원시의회에서도 이옥선, 노창섭 의원이 로컬푸드연구회를 만들어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경남로컬푸드협의회도 결성돼 있다."

-슬로푸드 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식이 중심이다. 푸드 퍼스트(food first)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라고 쓰자. 지금 우리나라 GMO(유전자재조합식품) 수입이 1년에 1100만t이다. 쌀 소비량은 1인당 62㎏인데, 사료·식용으로 1년에 먹는 GMO는 220㎏이나 된다. 소, 닭, 돼지가 먹는 것도 우리가 먹는 것이다. 실천하는 건 쉽지 않지만 슬로푸드의 답은 레스·베터·로컬(less·better·local)이다. 좋은 육류를, 좀 적게, 지역에서 생산된 걸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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