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청부살해사건 속 우리 사회 단면…전문가들 범법 묵인, 신뢰잃은 사법정의

'악마의 탈'을 쓴 인간이 무고한 한 여대생을 청부살해했다. 악마의 오해는 진실도 거부한 채 당시 이화여대 법대생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악마는 영남제분 남편의 뒷돈으로 무기징역수임에도 호화병실을 오가며 한국의 실정법과 정의를 유린하며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졸지에 꽃 같은 딸을 잃은 가정은 초토화됐다. 2002년 영남제분 회장 아내인 윤길자 씨가 사위의 이종사촌 여동생인 하지혜 씨를 청부 살해한 사건은 2016년 2월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억울하게 눈을 감은 딸을 잊지못하던 어머니가 곡기를 끊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여대생 청부살해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사인 사위가 하 씨와 불륜 관계라고 오해한 윤 씨가 조카와 그의 고교 동창에게 1억 7500만 원을 주고 벌인 일이었다. 하 씨는 그해 3월 납치돼 경기 하남의 검단산 산중에서 범인들이 쏜 공기총에 맞아 숨졌다. 하 씨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그로부터 14년여가 흐른 지난 2월 20일 하 씨의 어머니(64)가 집에서 숨을 거둔 것을 아들(39)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어머니의 삶은 딸이 비명에 간 이후로 피폐해졌다. 남편(70)은 "아내만 보면 딸 얘기가 나와 견디기 어렵다"며 2006년 강원도에 집을 얻어 따로 살았을 정도로 가정은 공중분해됐다.

이 사건은 단순히 청부살해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세가지 관점에서 국민에게 큰 충격을 남겼다. 첫째, 인간의 오해는 남의 생명도 앗아갈 정도로 무섭다는 사실이다. 악마로 변한 윤 씨는 거액을 뿌리며 청부살해를 할 정도로 남의 생명, 가정파괴는 가볍게 생각했다. 졸부들이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천박하고도 위험한 사고방식이 실제로 현실에서 범죄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둘째, 더 큰 충격은 악마의 범법행위에 의사, 검사, 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도 함께 최소한 묵인, 동조했다는 점이다. 윤 씨는 감형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허위진단서를 이용하여 형집행정지를 반복하여 받아내며 호화병실을 옮겨다니며 사실상 자유를 만끽했다. 사회적 정의와 윤리를 망각한 전문가 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무기징역범도 어떻게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한국은 생생하게 보여줬다. 언론의 고발이 없었다면 지금도 그는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 또 다른 충격은 상급법원으로 올라갈수록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워 감형, 솜방망이 처벌하는 한국 법원 판사들의 고무줄 판결이다. 검찰은 허위진단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모 교수와 윤 씨의 남편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1심 법원은 교수에게 징역 8월, 류 회장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각각 벌금 500만 원과 집행유예로 형량을 대폭 낮췄다. 항소심 재판부는 교수의 허위진단서 발급과 관련하여 "형 집행정지 결정은 검찰의 판단 몫"이라며 "비정상적인 형 집행정지 결정이 단순히 교수의 진단서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친절하게 해설했다.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럼 검사들은 뭐라고 할까. 자신들은 전문가인 의사 진단서를 근거로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형에서 벌금형으로,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한국 사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이렇게 관대하지는 않다. 돈있고, 힘있는 변호사를 고용하는 재벌, 준재벌급들에게만 이렇게 굽실거리는 사이 한국의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는 시궁창에 처박혔다. 경제선진국(OECD) 중 한국의 사법 신뢰가 최하위권에 맴도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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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호화병실을 오가고 의사, 변호사들은 영악한 돈의 심부름꾼으로 오가는 사이, 피해자 가정은 회복할 수 없는 이중삼중의 충격으로 가정이 파괴됐다. 아이를 먼저 보낸 가정은 거의 백프로 이혼하거나 별거에 들어가고 가정은 붕괴된다. 사법피해자들의 2, 3차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몫으로 고통 속에 죽어간다. 정의를 거론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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