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묵고 가라" 툭 던진 마음 쓱 번진 미소

남해바래길을 걷다 보면 더러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때마다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람이라거나 그냥 백수라고 대답합니다. 그게 불쌍해 보이셨는지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2코스 미국마을 초입에서 만난 아지매도 그렇게 우연히 만났습니다.

굳이 산책가던 길을 되돌려 마을을 안내해주십니다.

그리고 선뜻 집안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웰컴 투 마이 하우스!" 할머니식 영어라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환영 인사를 하시고는 차와 과일을 내오셨지요.

"봄에 꽃 필 적에 지금 사는 집을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이전 주인에게 팔라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샀어." 올해 66세 되셨다는 아지매는 시댁이 남해랍니다.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입니다.

미국마을 아래 시금치밭 아지매.

미국마을 바로 아래 시금치밭에서 만난 아지매도 그랬습니다.

아지매는 시금치를 키워 자식 대학 등록금 내셨답니다. 이제는 손자들이 대학에 들어간다는군요.

"우리 외손자 올해 대학 들어가서 보태줬제. 할머니가 되가꼬 좀 도와줘야지. 할머니 장하제? 허허허."

얼마 전에 딸이랑 일본 여행을 했답니다. 딸이 척척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고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참 잘 큰 것 같아 대견한 생각이 드셨답니다.

"그러면 밥은 우짤라꼬? 우리 집에 따라 올라갈까?"

굳이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걸 겨우 사양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다 그럼 조심하며 다니라고 당부하십니다.

거참, 남해 아지매들 인심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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