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카데미서 접한 동시 메모 습관·장난기 힘입어 발랄한 작품·등단 성과로

눈앞에 땅콩이 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썩진 않았을까?', '맛있을까?', '빨리 까먹어야지'. 일상적인, 평범한 생각이다. 하긴 땅콩에서 뭘 더 바라겠나.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될 것을.

하지만 황인희(26) 씨는 조금 달랐다. 인희 씨는 땅콩을 보고 '한반도'를 떠올렸다. 인희 씨 눈에 땅콩 겉모양은 한반도 모양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속은 두 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분단 현실과 비슷했다. 인희 씨에게 땅콩은 우리나라였다.

인희 씨는 발랄하고 엉뚱한 생각을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글로 써내려갔고 압축하며 운율을 더했다. 어른 시각으로 땅콩을 봤지만 어린아이에게 더 익숙한 소리로 만들고자 했다. 노력은 곧 성과를 냈다. 동시 '땅콩은 분단 중', '매미의 새 옷'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동시문예지 〈오늘의 동시문학〉 2015 가을·겨울호는 잘 다듬어진 글과 인희 씨 생각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는 잘 압축돼 있고 시작의도가 분명하다. 흔한 소재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도 갖고 있다"라고 평했다. 그해 말 인희 씨는 동시 작가가 됐다.

동시문예지 〈오늘의 동시문학〉 2015 가을·겨울호로 등단한 황인희 씨. 인희 씨는 어떤 사물이든 다르게 보려는 습관이 작품의 원천이라 말한다. /이창언 기자

인희 씨가 동시에 관심을 둔 건 2014년이다. 경남대학교 청년작가 아카데미 3기 수강생으로 등록한 게 발단이었다. 여기서, 애초 인희 씨가 관심을 둔 분야는 '시'였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했어요. 동화책부터 만화책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죠. 글은 시로 자주 썼어요. 장난기 많은 성격 탓에 이리저리 나다니기 바빴는데 시 쓸 때만큼은 차분해졌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줄곧 시에만 매달렸던 인희 씨에게 동시는 낯선 존재였다. 써 본 적도 없고 쓰고자 하는 의지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 아카데미 정일근 지도교수는 인희 씨 재능을 달리 봤다.

"작가 아카데미 2년 과정 중 1년이 지나갈 때쯤 교수님께서 '너는 동시를 더 잘 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믿고 동시를 쓰기 시작했죠."

정 교수 말처럼, 지난해 낸 성과가 말해주듯 인희 씨는 동시에 더 적합했다. 장난기는 '순수한 눈'이 돼 빛을 발했고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은 그들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특히 어떤 사물이든 다르게 보려는 습관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했다.

"가령 우산이 있다고 쳐요. 대부분 사람은 쓰임새를 생각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저는 모양이나 다른 용도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매미의 새 옷'이라는 작품도 그 같은 생각에서 비롯됐는데요, 매미가 탈피하는 과정에서 새 옷을 떠올렸죠. 제게 탈피는 '입는 일'이었거든요."

인희 씨 작품은 특정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쓰이는 모든 것이 작품 대상이다. 메모하는 습관도 이를 돕는다. 인희 씨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오가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을 수첩에 옮긴다. 그렇다고 또 곧이곧대로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동시작가가 주의해야 할 몇 가지도 영향을 미친다.

"먼저 단어선택이 참 중요해요. 폭력성이 깃들거나 너무 어려우면 안 되죠. 한자어도 자제해야 하고요. 분위기는 역시 밝아야 해요. 잔인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교훈적이어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죠. 독서 연령대에 따라 차이를 둬야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글을 써요. 유아에겐 조금 어렵게,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기엔 쉽게 써야 하죠. 그 점이 특히 어려워요."

작품을 쓰는 일 외에도 인희 씨가 주의하며 집중하는 일도 있다. 인희 씨는 당장 전업 작가로서의 삶보단 취업을 택했다.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해요. 그 때문에 일단은 사회에 더 부딪쳐보기로 했어요. 물론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제 장래 꿈 중 하나가 동시집을 내고 동화를 쓰는 건데요, 한발 한발 나아가야죠."

미발표 작품이 많이 쌓였다는 인희 씨. 인희 씨는 이르면 올해 그 작품들을 하나하나 공개할 예정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희 씨만의 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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