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에서 사부작] (4) 2코스 앵강다숲길

◆가천마을 팔각정에서 시작

휴일 남해군 남면 가천다랭이마을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고샅마다 유유히 흐르는 관광객은 정작 다랑논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마을을 벗어나 다랑논으로 향하니 문득 한적해진다.

남해바래길 두 번째 코스 앵강다숲길은 이 다랑논 끝자락, 팔각정에서 시작한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야말로 망망대해. 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일본을 왼쪽으로 끼고 태평양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태평양이라니 멋진 출발이 아닌가.

출발하자마자 대숲을 만난다. 파도소리와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가 묘하게 닮았다. 대숲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절벽 아래 가파른 경사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시작부터 난코스다. 길이 급한 경사를 가로지르는 만큼 난간을 튼튼하게 세워 놓았다. 더러 난간이 없는 곳이 있는데 발걸음 조심해서 옮기자. 조금만 더 가면 전망이 탁 트인 평지가 나온다. 바다 건너편으로 노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남해바래길 2코스가 시작되는 가천마을 팔각정.

평지를 지나 잠시 가파른 돌길을 오르고 나면 다시 넓은 평지가 드러난다. 한적하고 양지바른 곳이다. 뜻밖에 아늑하기도 해서 바래길에 숨겨진 비밀장소라고 할 만하다. 여기서 조금 걷다 보면 크고 작은 해안초소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이제는 쓰지 않는 곳들이다. 마지막 초소 옥상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길은 이제 노도를 완전히 오른편으로 제치고 나아간다. 이곳은 내리막이 꽤 가파르니 조심조심 걷자. 제법 숲이 깊어 혼자 걷기에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길이 정비가 잘 되었고 아기자기해서 걷는 재미가 있다. 노도는 이제 뒤편으로 사라지고 아득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러다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서부터 시멘트길이 시작된다. 낭떠러지길이 끝난 것이다.

◆홍현마을 석방렴을 지나

주황색 지붕이 이색적인 펜션을 지나 조금만 가면 조그만 선착장이 나온다. 홍현마을 초입이다. 여기서는 넓은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해변에 깔린 커다란 돌들이 인상적이다. 홍현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이런 돌들로 석방렴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단다. 석방렴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이 되면 갇히게 한 원시적인 어로 방법이다. 홍현마을에서 처음 만난 석방렴을 지나 방풍림을 에돌아 가면 또 다른 석방렴이 나온다. 앞엣것보다 크기가 작다.

홍현마을 석방렴.

두 번째 석방렴을 지나면 다시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바래길을 위해 새로 만든 인도가 산뜻하다. 그러다 길은 해변을 향해 꺾여 들어간다. 송림을 거느린 해변을 다 걷고 나면 바다를 등지고 돌아 나오는데, 완만한 경사에 걸쳐진 농지가 인상깊다. 그러고는 낮은 언덕을 하나 넘는다. 언덕길은 풍경이 곱다. 특히 언덕 뒤로 펼쳐진 하늘빛이 바다 못지않게 푸르다. 그 하늘을 보며 언덕 너머 풍경을 상상해보는 일 또한 멋지다. 소담하고 즐거운 길이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을 쭉 내려오면 월포해수욕장이다. 월포해수욕장은 바로 곁 두곡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두 해수욕장은 기본적으로 몽돌해변인데, 월포 쪽에는 자갈 사이 모래사장이 제법 풍성하다. 두곡은 온통 자갈 해변이다. 자갈밭은 음파 같은 곡선을 그리며 바닷물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두곡해수욕장 끝에서 길은 육지를 향한다. 이정표는 미국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마을을 관통해

이제부터 다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인도가 있지만 차들의 속도가 빠르니 조심하자. 가다 보면 남면과 이동면의 경계가 나타난다. 여기서 200m를 더 가면 길은 도로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다. 산 속에서 이 길이 맞나 불안해질 즈음 바래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리고는 잠시 산행을 하게 된다. 산길을 빠져나오면 포장된 농로가 산 중턱으로 이어지는데 도로 아래부터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경사는 온통 논밭이다. 이곳에서 앵강만을 바라보는 전망은 가히 2코스 최고라고 할 만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지런히 정돈된 농토와 그 너머 반짝이는 바다, 정박한 어선, 묵직한 존재감의 노도를 가만히 바라보자.

미국마을 가는 산중턱 농로에서 바라본 앵강만.

그 전망을 오른편으로 끼고 길이 계속된다. 가다 보면 수로 위로 철망을 걸친 길이 나오는데 울렁울렁 걷는 재미가 있다. 이후는 소소한 산속 오솔길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미국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정확히 미국마을 위쪽 끝이다. 미국마을(아메리칸빌리지)은 남해군에서 재미교포들이 노후생활을 이곳에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식으로 지은 주택들이 볼만하다. 지금은 펜션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미국마을을 관통해 빠져나오면 도로를 건너야 한다. 주변 논밭이 아주 반듯하고 가지런한데, 15년 전쯤 경지 정리를 해서 그렇다고 한다. 길은 그대로 바다를 만난다. 화계마을이다. 마을은 바닷가를 따라 제법 규모가 크다. 이 마을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곧 신전숲이다. 이곳이 앵강만의 가장 깊숙한 곳이겠다. 이전에 군부대가 있다가 이전을 했는데, 그 자리에 체험시설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앵강다숲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2코스 명칭인 앵강다숲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앵강다숲마을에는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가 있다. 여기까지 오느라 제법 지치기도 했을 테니 탐방센터에 들러 차도 얻어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자. 다시 길을 나서 신전숲 끝에서 신전교를 지난다. 작은 다리와 큰 다리로 이뤄져 있다. 이제부터 길은 해안을 따라 마을들을 연결하며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바다풍경은 앵강만의 반대편을 바라본다. 지금껏 지나온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천마을에서 마지막 벽련마을까지는 따로 이정표가 없다. 또 차도를 따라가는데, 인도가 따로 없기에 위험하기도 해서 굳이 힘이 남아돌지 않으면 원천마을에서 걷기를 마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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