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소리·느린 걸음 어떠랴 떠나는 청춘 잡을 수 있다면

22일 저녁 창원시 진해구 소사마을 노인회관. 어르신 몇몇이 장구며 북, 꽹과리를 주섬주섬 챙겨 나선다.

보행보조기를 밀고 가시는 분도 있다. 어르신들이 도착한 곳은 근처 논이다. 그곳에 달집이 묵묵하게 서 있다. 구경꾼이래 봐야 동네 어르신들과 주민 몇 명.

어르신 풍물대가 느릿느릿 힘겹게 달집 주변을 돌기 시작한다. 몸이 불편한 한 할머니는 아예 논두렁에 털썩 주저앉아 장구를 친다.

그런데 맙소사, 이건 뭐, 장단이 엉망이다. 그냥 깡통 두드리는 소리같다. 구경하던 이들도 허허 웃으며 한마디씩 한다.

보행보조기를 끌고 달집태우기 구경나온 소사마을 어르신들.

"(장단도) 맞다 안 하고…."

"맞추고 안 맞추고 할게 어딨노! 소리만 나면 되지!"

그런데 맞은편 논, 아주 가까이에 또 다른 달집이 세워져 있다.

진해구 웅동1동 달집태우기 행사장이다. 웅동 행사장에는 천막도 있고 조명도 있고 음식도 마련돼 있다.

음향시설도 빵빵해서 행사를 진행하는 마이크 소리가 소사마을까지 쩌렁쩌렁하다. 웅동 풍물대는 울긋불긋 복장도 제대로 갖춘 데다 소리도 잘 맞고 시원시원하다. 달집도 아주 크고 구경꾼도 아주 많다.

소사마을 한 할머니께 여쭈었다.

"이리 가까이 있는데, 저기 웅동이랑 같이 하지 와 이래 따로 합니꺼?"

"우리는 뭐 해마다 동네에서 했으니까, 할 수 있을 때꺼정 해야지. 그래도 올해 달집은 저기보다 우리가 잘 짓다. 조금 작아서 그렇지."

다른 할머니가 말을 잇는다.

"풍물 하는 사람들이 다 죽으삐서 올해는 소리가 그렇다. 이 동네 젊은 사람 중에 풍물 하는 사람들은 저기 웅동 행사하는 데 가서 하고 있다 아이가."

드디어 소사마을 달집에 불이 붙는다. 불꽃을 배경으로 할머니들이 간절히 두 손을 모은다.

불 붙은 소사마을 달집, 왼편으로 웅동1동 달집이 보인다.

그 모습에 문득 마음이 경건해진다. 불편한 몸들로 매년 꾸역꾸역 달집을 세워내는 이유가, 저 기도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다. 불꽃이 커지자 갑자기 할머니들이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청춘아 돌려다오)를 부르기 시작한다.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어르신들의 청춘처럼 불꽃은 곧 사그라지고 만다.

어르신들이 떠나고 난 논에 가만히 서 있자니 왠지 마음이 애잔해진다. 건너편 웅동 행사장에서는 여전히 마이크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보름달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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