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통영시 용남면 대방포마을 박태곤 이장

마을 속까지 바다가 파고든 대방포마을은 우선 아름답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굴 패각이 지천이어서 대방포마을은 그야말로 '굴'마을이다.

대방포는 굴어민과 양식업자, 굴 양식 종사자들이 많지만 40여 가구, 120명 정도가 사는 작은 어촌이다.

박태곤(62) 이장은 9년째 이 마을 이장이다. 그의 가계는 9대조부터 이곳에 정착했고 마을은 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5년 전 그는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암 수술을 받은 그해 그는 마을이 석산 개발로 몸살을 앓자 '석산 개발 해결'을 위해 병중에 이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흙만 파가기로 한 산에 주민 동의 없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며 수만 평의 석산을 개발하자 주민들 저항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태곤 이장은 '석산 문제만 없다면 대방포마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라 자부한다. /허동정 기자

이 때 그는 건강 때문에 "이장직을 맡지 마시라"는 아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말리는 아내에게는 "죽을 건데 조금 빨리 죽으면 어떻나. 옳은 일 하다가 빨리 죽겠다. 말리려면 이혼하자"고 했다.

그렇게 그는 그해 1년간 이장직을 맡았고 병 때문에 5년 정도를 쉰 다음 상태가 좋아지자 다시 이장직을 맡은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방포마을을 포함한 3개 마을은 석산을 쭉 둘러싼 모양인데 개발 현장과 상당히 가깝거나 대부분이 현장 인근에 붙어 있어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을을 대표해 소송을 했고 결국 대법원에서도 승소했다.

승소했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박 이장은 "통영시가 업체에 '석산을 복구하라'는 적지복구 명령을 했다. 하지만 적지복구 명령이 오히려 '돌을 캐게 하는 개발 행위'였다. 이 문제는 1심 승소 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루한 소송 때문에 나나 주민들이나 모두 병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동네 일을 많이 한 이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용도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마을 물양장을 건의해 만들었고 선착장을 만들기도 했다. 줄기차게 정치인과 행정에 요구하면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을 조성하거나 마을 농로를 연장하기도 했다. 오작동 등 문제 많았던 상수도 시스템을 바꾸고 접안 시설인 부잔교를 설치했다. 마을 안길을 아스콘 포장했고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했다. 체육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대방포마을은 인근 마을과 함께 농어촌공사가 발주한 원평권역종합정비사업 지구에 해당한다. 48억 5000만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사업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마을에 생태공원이 조성되고 정자와 운동시설이 들어선다. 낙후된 마을이 이 사업으로 상당히 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방포마을은 통영시가 추진하는 통영LNG발전소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발전소가 들어설 터와 마을 바다가 5~6㎞ 정도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박 이장은 어촌계장 일도 맡고 있다. 또 발전소 문제와 관련해 통영어업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발전소가 들어서면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뿜어낸다. 이 냉각수는 플랑크톤이 없는 죽은 물이다. 대방포마을 바다는 항아리처럼 갇혀 있는 내만으로 중요한 어류 산란장이다. 죽은 물이 마을 바다로 유입되면 산란장 생명은 먹을 게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된다."

박 이장은 "멧돼지가 사람보다 중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멧돼지가 7~8마리씩 몰려다닐 때가 있다. 이장으로 몇 번 건의했지만 현행법상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멧돼지 때문에 겁이 나 사람이 살지 못한다.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분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포수들에게 포획하는 비용이 너무 낮고 포획한 멧돼지를 팔 수도 없다. 멧돼지 음식점을 허가해 줘야 한다. 멧돼지가 희귀 동물이 아닌 이상 적절한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

그는 마을 자랑을 많이 했다.

"주민들이 착하고 열심히 사니 작은 마을에 박사는 7명, 교수가 5명 정도다. 굴로 말미암아 전국에서 어민소득이 가장 높은 마을이 대방포다. 석산 문제만 없다면 국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다."

박 이장은 21세 때 일본을 오가는 활어선을 탔고 27세에 대서양 트롤 어선 선원이었다가 다시 상선을 타고 세계를 돌았다. 13년 승선 시절 전문서적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고 배를 타 번 돈으로 고향에서 굴 양식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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