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0) 산청 시천면 지리산담쟁이농원 손영욱·이재순 부부

"오늘 감나무 가지치기를 시작했습니다. 임대료를 주고 전동 전지가위를 빌려 내일까지 이곳 감나무밭은 작업을 끝내야 합니다." 산청군 시천면에서 지리산담쟁이농원을 운영하는 손영욱(57)·이재순(57) 부부가 집 뒤편 감나무 밭에서 바쁜 일손을 움직이다 우리를 맞는다. 부부의 귀농이야기를 들으려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데 인터뷰하기가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부산서 동네 슈퍼마켓 운영하던 부부

"시부모님을 모시고 부산에서 동네 슈퍼마켓을 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것을 우리 부부가 이어받아 키웠는데 워낙 남편이 부지런한 덕에 슈퍼마켓은 잘됐습니다. 우리는 50대 후반쯤 두 사람의 고향인 산청으로 귀농할 것이라고 30대 때부터 마음먹고 있었죠. 그런데 시부모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우리 부부마저 몸에 이상이 와 예정보다 일찍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6년 전입니다."

빌린 기계 두 대 모두 놀릴 순 없어 남편 손 씨는 혼자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내려온 이 씨가 지난 기억을 더듬는다. 올해 채취한 고로쇠 수액과 함께 차상에 내놓은 곶감이 직접 생산한 것인지 빛깔이 참 곱다.

"시고모님 소개로 스물다섯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되셨습니다. 4남 2녀 중 셋째인 남편은 이후 18년을 어머님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하던 시아버지마저 파킨슨병이 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손영욱(왼쪽)·이재순 부부가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부모님 병시중에 가게 운영까지 부부의 도시 생활은 여간 고단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의식 없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니 그것은 부부가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부부에게도 몸에 탈이 생겼다. 손 씨는 스트레스로 만성 두통에 시달리게 됐고, 이 씨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왔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시아버지께 고향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병원에 다니는 것은 지금보다 불편하겠지만 공기 좋고 물 맑은 지리산 아래에서 살면 부모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이 씨에게 시아버지는 인생의 조언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했다. 옛날 산청에서 민선 면장을 지낸 시아버지는 엄했으나 며느리에겐 한없이 너그러워 이 씨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받아줬단다.

"남편 믿고 시작한 시집살이는 어린 신부에겐 많이 힘들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철없이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왔는데 딱히 갈 곳이 없더라고요. 곰곰 생각하니 남편이 싫어 집 나온 것도 아니라 결국 다시 들어갔죠. 그런 며느리를 묵묵히 다독여줬던 아버님이셨습니다."

고향으로 가자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어미가 시골에 가겠다면 그렇게 하자' 그 한 마디가 끝이었다. 그리고는 불과 1주일 만에 이사를 했다. "슈퍼마켓을 처분해야 했는데 이전부터 우리가 귀농할 것을 안 주위 분 중에서 인수하려는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이 곧바로 인수하겠다더군요. 동네에서 오랫동안 운영하던 슈퍼마켓이다 보니 더러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사람도 있었는데 외상값 회수도 못 하고 장부만 챙겨 산청으로 왔죠. 우리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야반도주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2010년이었다.

◇건강 되찾은 부부, 곶감 만들기 정성

갑자기 앞당겨서 결정한 귀농이었지만 부부는 30대 중반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게 있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이 목돈이 되면 친정어머니께 부탁해 이곳 감나무밭을 꾸준히 매입했었다. 감나무농장이 8000평 정도 됐으며, 24평 정도 되는 집도 리모델링해 둔 게 있었다. 미리 곶감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꾸준히 공부한 터라 귀농생활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시부모님은 여기서 지내시다 몇 년 전 다 돌아가셨습니다. 계속 부산에서 모셨더라면 더 오래 살아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효를 저지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하죠."

하지만 부부는 귀농하고서 건강을 회복했다. 만성 두통에 시달렸던 손 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머리가 맑아졌고, 이 씨도 귀농생활 1년 만에 더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농사일을 하느라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 없단다.

"공부를 했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농사는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감 농사를 잘 지어야 좋은 곶감을 만들 수 있는데 숙달된 농부가 아니다 보니 농장을 부부가 관리하기엔 벅찹니다. 둘이서 한 차례 풀을 베고 돌아서면 다시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오늘 전정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초보여서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산청군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영농교육에다 곶감작목반을 통해 전문가를 소개받아 감나무 관리부터 곶감 만드는 방법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고기를 얻기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내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 더디지만 하나하나 눈으로 보며 배우고 있습니다."

가지치기 중 잠시 쉬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김구연 기자

부부의 노력 덕분에 지리산산청곶감축제에 곶감을 출품해 1등의 영광을 두 번이나 누리는 보람도 얻었다.

부부는 곶감 생산이력제에 등록해 매년 약 5동(1만 개)을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한 곶감은 전량 직거래로 판매해 남들보다 적은 양임에도 괜찮은 수익을 올린다. 주로 기업 등에서 선물용으로 대량 주문하는 게 많단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우리 곶감을 몇 상자 주문해 거래처에 선물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 선물을 받은 경기도 한 기업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매년 똑같은 선물을 받고 있는데 한결같은 품질에 만족한다며 같은 상품으로 몇백 상자를 구입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한결같은 정성의 결과가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인터뷰로 혼자 일하고 있을 손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쁜 일손을 빼앗아 남편에게 꾸지람 듣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워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 씨는 "남들은 마누라 모셔 두고 사모님 소릴 듣게 한다는데 우리 아저씨는 일꾼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일을 더 많이 합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그 흔한 승용차 한 대도 뽑아주지 않습니다." 자리에 없는 손 씨를 타박하는 그였지만 투정마저도 마냥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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