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복합'생활문화공간

문화는 결국 사람으로 채워진다. 유명한 전시나 대형 기획 공연으로 문화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거나 공연이 끝나고 예술인과 술잔을 기울이는 공간, 각자의 책에 파묻히는 장소가 아닌 서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놀이터를 발견해 모았다.

대학과 쌈지공원 주변에 생겨난 복합 생활문화공간으로 창원 '스페이스 펀', 창원 'OSAEK(오색)', 김해 '생의 한가운데' 3곳이 주인공이다.

◇문화 사교장, 창원 '스페이스 펀'

'꽃 수채화 일러스트', '나의 첫 번째 시나리오', '클래식에 취하다' '울라라 부킹타임' 등 스페이스 펀의 2월 달력을 채운 프로그램만 20여 개다. 1개 프로그램당 운영자(강사)를 포함해 5명을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5명이 넘는 순간 일방적인 강의가 되기 때문이다.

"원 테이블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테이블 두 개만 붙여도 서로 대화 한 번 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모두가 사귈 수 있는 인원 5명을 넘지 않도록 합니다."

정은경(32) 스페이스 펀 공동대표는 "이곳은 문화센터, 학원과는 다르다. 수업도 아니고 전문적인 기술을 연마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매개로 사람을 사귀는 곳"이라고 했다.

스페이스 펀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귀니의 수채화 원데이클래스' 모습. /스페이스 펀

지난달 15일 문을 연 스페이스 펀(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46-9)은 창원대 앞에 자리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특한 카페라고 여기기 쉬운 파란색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1층에서는 커피 등 각종 음료를 판매하고, 독립출판물 소개 코너와 청년 사회적 기업가 제품 등을 판매하는 편집 스토어 기능을 더했다. '블랙홀'이라 이름 붙은 지하 1층은 50석 규모로 공연, 전시, 세미나 공간이고, 지상 2층은 문화 강좌가 이뤄지는 장소다. 옥상도 활용해 영화 상영, 마켓 등을 연다.

동네 주민 참여를 위해 지난 13일 '슾헌 노래 자랑'을 시작했으며 다음 달 12일 두 번째 무대가 예정돼 있다. 또한 봄을 맞아 다음 달 26일에는 인디밴드와 함께하는 '삼거리 음악다방'과 26·27일 '펀&판타지 마켓'을 열어 공간을 더 알릴 계획이다.

스페이스펀 정은경 대표.

◇카페 + 전문 공연장, 창원 'OSAEK'

창원대 앞으로 지역 예술인과 인디 음악인들이 모여들 수 있을까? 스페이스 펀과 500m 떨어진 거리에 'OSAEK'(오색·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54-10)이라는 카페형 공연장이 다음 달 문을 연다.

드로잉 작가 신가람(34) 씨는 지난달 30일 오색이 정식으로 문도 열기 전에 북콘서트를 열었다. 오색 대표 여은상(48) 씨와 인연이 깊은 신 작가는 내부 공사 중 거친 벽돌 분위기를 살려 <리틀포니> 출간기념으로 공연과 앱북 상영회를 가졌다. 공간 오색의 탄생을 응원이라도 하듯 오는 28일 인디 싱어송라이터 조용호가 1집 <새로운 마을>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연다.

지난달 30일 OSAEK(오색)에서 열린 신가람 작가의 북콘서트./신가람

건축을 전공한 여 대표는 창원 용호동 가로수길에 '래티튜드 25'라는 카페를 지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래티듀드 25에서 종종 열었던 인디 음악인을 위한 공연 무대를 'OSAEK'으로 옮겼다.

오색은 지역 예술인이 서는 무대에 대관료를 받지 않는다. 결국 대관료는 주중에 오색을 찾은 미래 관객에게 판 음료나 밥값으로 충당한다는 계산이다.

여 대표는 "오색은 카페와 공연장 기능을 철저히 구분할 것"이라고 했다. 주중에는 음료와 더불어 식사와 주류를 판매하는 카페로, 주말에는 음료도 팔지 않는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공연하는 중에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면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즐기러 오는 사람뿐 아니라 창작자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공연을 할 수 있는 최상의 공연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OSAEK 여은상 대표.

◇이야기 책 보따리 푸는 김해 '생의 한가운데'

지난 20일 오후 5시 김해 내외동 홍익공원 옆에 위치한 인문 공간 '생의 한가운데'를 찾았다. 토요일 황금 같은 휴일에 40~50대 30명이 모여 인문학 강연에 심취해 있다. 김호연 한양대 교수가 '사회적 고통과 치유, 그리고 우리의 삶'이란 주제로 주민들을 만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16일 문을 연 '생의 한가운데'는 주로 강독 모임을 하는 공간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12시에는 논어 강독, 수요일 오전 10~12시에는 니체 강독을 한다. 또한 매월 둘째·넷째 목요일 오후 7시 30분에는 골목 독서회를 연다.

지난 20일 생의 한가운데에서 열린 인문 강좌 '사회적 고통과 치유, 그리고 우리의 삶' 모습. /박정연 기자

박태남(43) 생의 한가운데 대표는 어린이책시민연대라는 사회단체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작은도서관 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 2014년 2월 '막걸리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인문학 강좌가 생의 한가운데라는 인문 공간의 탄생 배경이다.

"인문학 강좌를 딱 10번만 열고 끝내야지 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고 대화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끝을 낼 수가 없었죠. 공공도서관이나 개인교습소 등 별별 공간을 빌려 10여 명 사람이 모여 인문학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는데 공간에 대한 설움이 컸던 거죠."

박 대표는 "문화든 독서든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유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힘을 주는 공간으로 키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보는' 문화를 넘어 '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복합 생활문화공간을 찾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길 바란다.

생의 한가운데 박태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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