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 서고자 배운 커피, 새로운 시작 이끌며 생업으로 "빛났던 옛 기억도 잊지않고파"

진주교육지원청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카페 '목요일 오후 네시'. 늦은 오후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겨울 햇살이 비껴드는 탁자 앞에 정윤남(37) 씨가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20대부터 연극을 했어요. 고향인 진주에서 하다가 본격적으로 하려고 대학로에 갔어요. 연기 레슨도 받아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커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아 재밌구나. 그래서 커피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시간을 내서 조금씩 조금씩 하다가 지금은 결국 커피로 먹고살고 있네요."

윤남 씨가 카페를 연 지는 이제 2년 반 정도. 손님이 앉을 자리보다 커피 관련 기계 장치가 차지하는 공간이 더 크다.

"주로 원두를 볶아서 납품을 해요. 물론 손님이 오시면 커피를 내리죠. 혼자 있을 땐 로스팅과 드립 방법을 연구해요. 커피가 재밌는 게 매뉴얼대로 추출한다고 똑같은 맛이 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커피와 연극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연극도 그렇잖아요. 똑같은 대사를 주고받아도 상대방과의 호흡에 따라 연기가 달라지죠."

커피를 내리는 정윤남 씨.

 

인생에서 커피를 만난 건 큰 행운이라고 윤남 씨는 말한다.

"저는 에고가 무척 강한 사람이었어요. 자신을 솔직히 보여주지도 못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도 않았어요. 지금까지 연극만 계속 했다면 아마 엄청나게 편협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커피를 파는 일은 서비스직이니까 만나기 싫어도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고, 때로는 저 자신을 열어 보여주기도 하고요. 분위기 탓인지 커피 맛이 그런 건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이상하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야기하다가 울고 가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게 정기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도 있어요."

그렇다고 윤남 씨가 연극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많진 않지만 무대 위에서 제가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 기억들은 제게 아주 소중하죠. 무대라는, 그 마약 같은 공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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