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 작가 5주기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전쟁·여성·글쓰기'로 삶 조명…사회 향한 서슴없는 일침도

죽는 날까지 현역 작가로 남고 싶었다는 박완서(1931~2011). 떠난 지 5주기를 맞아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이 세상에 나왔다.

박완서의 맏딸이자 경운박물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호원숙(62) 씨가 엮은 책으로 문인과 문학평론가들이 살아생전 나눈 대화 9편과 이병률 시인의 새 글이 보태졌다.

1980년부터 2010년까지 박완서의 30년이 모인 대담집에는 서강대 국문과 김승희 교수, 장석남 시인, 김연수·정이현 소설가, 신형철·박혜경 문학평론가 등의 대화체가 담겼다.

한 권의 책이 '전쟁', '여성', '박완서식 글쓰기'라는 세 가지 핵심어로 생전 모습을 여러 번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박완서는 전쟁이 준 수모와 굴욕을 소설로 갚아줄 수 있겠다고 여겼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 김승희, 조선희, 장석남, 최재봉, 김연수, 정이현, 김혜리, 신형철, 박혜경, 호원숙

"6·25는 내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놨어요. (중략) 오빠가 죽고 빨갱이로 몰리고 수모와 굴욕을 당하고 밑바닥까지 가는 가난을 겪을 때 나는 이 전쟁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 개인사 혹은 가족사에 어떻게 관계했는지 소설 속에 풀어 놓는다. 그가 독자에게 관심 있게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누가 행복하게 되고, 불행해졌나보다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주인공의 몰락에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도시의 흉년>에서 한 하층민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 통에서 매춘업과 군수품 밀매업에 나선다. 전시 상황의 부도덕한 돈벌이는 상업자본으로 옮겨가고, 1960~1970년대 산업 사회가 되면서 이 일가는 중산층이 된다. 여기서 전쟁은 중산층의 물질적 기반과 허위의식의 형성과정을 풍자하는 배경이 된다.

'고발하고자 쓴다'는 소설가 박완서 글의 원천에는 여성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박완서가 1970~1980년대 여성문제를 다룬 소설들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동시에 평론가들 사이에, 특히 여성 평론가와 남성 평론가들 사이에서 다소 이견이 나타나기도 했다. 여성의 고통이 과장된 게 아니냐는 것이 쟁점이었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기도 했는데, 박완서는 여성문제를 다루어야겠다고 의식하고 쓴 건 <살아 있는 날의 시작>뿐이라고 했다.

"정말 좋은 소설이라면 남자가 썼더라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도 똑같은 인간으로 그린다면 말이죠. 그런데, 많은 남성 작가들이 여성은 창녀가 아니면 성녀라는 식으로 그리더군요."

그는 자신 작품의 주인공을 발랄한 여대생보다 가정에 파묻혀 살며 평범하게 찌든 여편네라고 말했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한 이유도 주부라는 역할 때문이었다. 한 해 걸러 애 다섯을 낳아 20대를 보내고 막내까지 초등학교 보내 놓고 나니 30대가 다 지났다.

더불어 박완서는 여성 작가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에도 일침을 서슴없이 놓는다. 주부도 직업이라고 여겼다.

"저나 다른 여성 작가들을 두고 '여성이니까 직업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더 고통스러운 거예요. 저는 전업작가가 아니었습니다. 편하게 쓴 게 아니죠."

소설가 박완서는 쉽게 읽힌다고 해서 쉽게쉽게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퍼즐을 맞추듯 글을 쓰는 행위는 흩어진 걸 찾아서 연결하는 고된 노동이다.

대담집에서는 그가 말하는 글쓰기의 숨은 매력도 만날 수 있다. 다소 생경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 어휘를 사용하는 이유라든지, 매끈하게 읽히는 문장의 맛, 결핍감으로 생겨난 문학적 상상력 등은 보너스다.

글쓰기에 있어 '부끄러움'과 '오기'는 박완서의 귀중한 정신 가치로 표상된다.

이를테면 정신적 가치가 붕괴한 현대사회에서 타협만 하다 보면 부끄러움만 낳는다. 하지만 사람다움을 짓밟는 힘에 대해서는 오기를 부려야 한다고.

"나는 이웃들의 삶 속에서 존재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무사태평하게 안주하는 태도는 절대로 안 된다고 끊임없이 찔러주고 싶습니다."

218쪽, 달 출판사,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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