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내 맘대로 여행] (74) 대구 경상감영달성길

어느 지역에서건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곳을 마주할 수 있다. 세월이 비켜간 그곳은 산업화의 뒷길로 밀려난 스산함이 알록달록한 벽화로 치장되어 있기도 하고, 미처 닿지 못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아련함을 주기도 한다.

시간 여행의 길목에서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떠났다.

경상감영공원 내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 1 코스, 경상감영달성길'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경상감영공원은 조선의 지방 행정 8도제하에 경상도를 담당하던 감영(현대의 도청과 같은 역할)이 있던 곳이다. 조선 초기에는 경주에 있던 것이 상주, 팔거현, 달성군, 안동부 등지를 옮겨다니다 선조 때 최종적으로 대구로 이전돼 이곳에 정착했다. 이후 고종 때 갑오개혁으로 지방 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뒤에도 경상북도의 중심지였다.

대구 근대골목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 있는 향촌문화관. 1970년대 대구 최고 번화가였던 향촌동을 재현했다.

역사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이제 이곳은 편안한 휴식을 주는 공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감영공원의 중심에는 선화당이라는 멋스러운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선화당은 경상감영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로 1982년 3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관찰사가 공무를 보던 곳으로 1730년 두 차례 화재를 입었고 지금의 건물은 순조 때 재건됐다.

선화당 뒤로는 징청각도 보인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에서 관찰사의 관사로 쓰던 건물이다.

길을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하마비'라는 비석 앞에 발을 멈추게 된다.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경상감영공원

조선을 지나 근대로 발길을 돌린다. 공원과 인접해 대구 근대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근대역사관 건물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된 것으로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됐다. 2003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대구시가 2008년 대구도시공사로부터 기증받아 대구 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꾸며 2011년 1월 문을 열었다.

대구 근대의 태동에서부터 교육, 문화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내버스를 도입한 부영버스를 타고 영상물을 따라 대구 근대거리를 체험하는 '부영버스 영상체험실'은 편히 앉아서 대구를 구경할 수 있다.

▲경찰역사체험관

도로 하나를 건너면 대구 중부경찰서가 있는데 1층에 경찰역사 체험관이 있다. 실제 업무가 한창인 경찰서에 들어가려니 지은 죄도 없이 움츠러든다.

경찰역사 체험관은 팝옵티콘 구조(중앙의 원형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감시탑 바깥의 원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도록 설계해 죄수들의 감시를 쉽게 만든 구조)다. 자해방지 유치장 체험관, 신체수색실, 과학수사 체험관 등 제법 사실적으로 꾸며져 있다.

10여 분을 걸어 근대 여행의 정점인 '향촌문화관'에 도착했다. 1970년대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던 향촌동. 대구읍성의 화약고가 있던 한적한 이곳은 대구역이 들어서면서 물류 수송의 중심이 된다. 이후 읍성이 헐리면서 행정·금융·상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1950년대 피란 내려온 문인들은 향촌동의 다방을 본거지로 삼아 글을 썼고 어쩌다 원고료라도 받는 날이면 이곳 막걸릿집으로 몰려왔다.

▲ 향촌문화관

당시 다방은 출판기념회 등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막걸릿집은 창작활동의 또 다른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음악가 김동진, 나운영, 권태호, 연예인 신상옥, 장민호, 최은희, 화가 권옥연, 김환기, 이중섭 등이 남긴 숱한 일화들이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인의 정신적 고향이었던 향촌동 일원의 모습을 재현한 향촌문화관은 1912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이 있던 곳이다.

사람이 모이던 동네는 추억이 됐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그 골목에 얽히고설킨 추억을 체험하는 젊은이들로 생기가 넘친다.

▲ 향촌문화관

<여행경로>

△경상감영달성길(3.25km, 탐방소요시간 2시간 30분) = 경상감영공원→대구근대역사관→향촌문화관→대구문화관→북성로(공구박물관)→경찰역사체험관→종로초등(최제우나무)→달서문→삼성상회→달성토성(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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