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 제 역할을 했으면 우리 사회가 이지경이 됐겠느냐는 한탄조의 이야기를 쉽게 접한다.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눈 똑바로 뜨고, 세상돌아가는 것을 감시했더라면 그랬겠냐는 기대섞인 불평이다.

유난히 격동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근·현대사를 돌아보았을 때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구현하는 지식인이 있었던데 반해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한 반 민족행위자들도 있었던 탓이다.

<한국의 지성 100년-개화사상가에서 지식 게릴라까지>는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지식인의 활동상을 되짚어보면서 ‘한국의 지성’을 정의하고 모색하는 시도다.

추천의 글에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밝히고 있듯 ‘이제 우리 민족사에도 지식인들의 생각만이 정리된 사상사의 범위를 넘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함께 다뤄진 지성사를 엮을 때가 됐고 이 책은 그 작업을 위한 밑그림’역할이다.

책은 크게 5개의 부로 구성돼있다. 문명개화와 국권의 상실(대한제국 성립시기~1945년 해방·1부), 좌우의 이념대립과 정부수립(해방이후~1960년·2부), 경제개발 독재 그리고 민주주의(1961~1987년·3부), 근대 민주주의 형성과 시민사회의 성숙(1987년~현재·4부), 끝으로 남는 문제들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지식인 사회에 남은 문제와 21세기에 지식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5부)을 다뤘다.

특징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시기별로 지식인의 모습을 다룬 글과 함께 그 글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글을 담고 있는 점.

가령 이런 부분이 있다. 이만열교수(숙명여대 사학과)가 1910년대 신지식층을 설명하면서 ‘1910년 일제 강점기들어 유학을 통해 자유주의에 접했던 지식인들 중에는 뒷날 민족문제를 두고 이광수처럼 훼절하는 이들이 나타났고…훼절과 친일행각은 민족적 고통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지 못했고 지식인으로서의 삶이 민중과 유리되었고, 민족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조석곤 교수(상지대 경제통상학부)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훼절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들은 지식인의 부류에 속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왜냐면 그들의 문제는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전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고 거짓된 프로그램을 전파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지식인이 ‘미래의 향방을 정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이론과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이라고 보았을 때 그들은 그렇지않다는 것이다. 조교수는 덧붙여 해방후 이승만정권시절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조봉암이라는 예를 들었다. 조봉암은 남한의 농지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암흑기엔 활동을 정지하고 있었으되 때가 왔을 때 정력적으로 사회개혁에 자신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정력적으로 수행했다면서 무릇 지식인은 ‘자신의 세계관을 관철시키기 위한 성실한 지적연마와 타협하지 않는 기다림과 암중모색은 자신이 믿는 프로그램의 구체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2부에선 분단체제하의 남북 지식인의 활동을 언어와 사상 연구·문학을 중심으로 남북을 비교하며, 3부에선 이른바 개발연대(開發年代)를 다룬다. 개발연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의 행태에 대한 일갈도 흥미롭다. ‘개발독재에 대해 침묵을 지키거나 묵종했고, 일부 명예욕이나 권력욕이 강한 지식인들은 아예 발벗고 나서서 개발독재를 지지 찬양했다.

군사작전처럼 대기업수출중심 산업화 전략에 힘입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고 이는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성을 심화시켰으며, 경제적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외 모든 것은 부차적으로 희생된 결과 사람들은 경제성장·아파트·자가용 이외엔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할 길 없는 공허한 인간이 되어갔다.’(정영태 인하대 정치학과 교수)

4부에선 우리사회가 점차 민주주의로 이행해가고 시민사회 또한 성장하고 있다고 보면서, 지식인들이 투사의 유형에서 벗어나 개별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파악한다. 결론에 이르러 장회익 교수(서울대 물리학과)는 ‘지식인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머물지 말고 집합적 의미의 지성을 이뤄내야 하며 실천력을 갖기 위해선 내적 충실화를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강만길·김대환·조동일·김진균·남송우·조한혜정 등 총 18인이다. 336쪽. 민음사.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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