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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대게'로 집도 만들었다는 사실

[신우해이어보] (11) 19세기 영남서도 잡혔다는 대게, 등딱지로 기와 대신 지붕 덮기도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webmaster@idomin.com 2016년 02월 16일 화요일

이번에 소개할 녀석은 게인데, 그중에서도 요즘 제철을 맞은 대게를 중심으로 살필까 한다.

옛 문헌에서 게는 한자로 해(蟹)로 쓰기도 하지만 정약전의 <현산어보>에는 해와 함께 '궤'로도 적었다. 참게를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 '진궤'라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介)라고 적기도 했는데, <현산어보>에서 갑각류와 조개류를 개류(介類)로 분류한 데서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옛 문헌에 묘사된 게의 특징은 갑(甲)으로 묘사된 단단한 껍데기와 옆으로 가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일찍이 <주례>의 고공기에 "옆으로 가는 것이 게의 한 습성"이라 한 것이 처음이다. 이런 보행 특성에 빗대 방해(旁蟹)라거나 횡행개사(橫行介士)라 의인화해서 부르기도 했다.

대게는 담정 김려가 우리 고장에서 <우해이어보>를 쓴 19세기 초반에만 하더라도 우해를 비롯한 남해안에서도 두루 잡히던 수산자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경북도 연안의 냉수대에서부터 울릉도와 독도 근해, 울진(죽변, 후포), 영덕(강구, 축산), 포항(구룡포), 울산(정자) 등에서 주로 잡힌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당시와 지금의 해양환경에 큰 차이가 있음을 가리키는 하나의 지표로서 <우해이어보>에 실린 대게는 지난번에 살핀 청어와 함께 그 즈음의 해양환경이 소빙기였음을 일러주고 있다.

마산어시장에 나온 대게. /최헌섭

<우해이어보>에는 대게를 자해(紫蟹·붉은 게)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자해는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이 된다. 대게는 달리 죽해(竹蟹), 죽촌(竹寸) 또는 다리의 마디가 여섯이라 죽육촌(竹六寸)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실제 다리를 떼어 보면, 네 마디뿐인데 짧은 두 마디는 몸통에 붙어 있다. 몸집이 커서 대해(大蟹), 발(다리)을 강조하여 발게라 부르고 발해(拔蟹)로 적기도 했다. 담정은 게를 갑충(甲蟲)이라 했는데 갑옷처럼 단단한 껍데기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 보인 듯하다.

"대게는 갑각류(갑충) 중에서 가장 크다. 큰 것은 그 껍질에 수십 곡(斛·10말)을 담을 수 있다. 이런 게는 낚시나 그물로 잡을 수 없다. 이곳 사람들 말로는 거대한 게는 천 년마다 껍질을 벗는데 그 껍질이 왕왕 바닷가로 떠올 때가 있다. 뱃사람들은 그것을 주워서 지붕에 덮는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바닷가의 갑각류들을 살펴보니 모두 일년에 한 차례 껍질을 벗는다. 게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 년에 한번 껍질을 벗는다는 말은 신비롭게 꾸며낸 말일 것이다."

담정의 말대로 대게의 크기나 탈피 횟수는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 게와 같은 갑각류는 껍데기가 신축성이 없어서 등딱지를 벗어야 성장하게 되는데, 성체가 된 대형종은 담정이 관찰한 바와 같이 한 해에 한 번 껍데기를 벗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크기는 아무래도 과장이 심하다. 실제 어시장에서 관찰한 대게 가운데서 크다는 러시아산도 등딱지가 어른 주먹 크기보다 훌쩍 큰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담정은 이어 대게의 등딱지를 지붕을 덮는 건축재로 이용한 특이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 영남의 바닷가 집들은 섬에서 주운 게 껍질로 소금 집과 밭의 잡이나 주점의 임시 집을 덮는다. 돔과 같은 지붕은 마치 기와집과 같은데, 그 안에 오륙 명이 들어갈 수 있다. 잡은 이곳 사람들이 시렁을 걸어서 만든 집을 부르는 이름이다."

단원 김홍도 '해탐노화도'. /오마이뉴스

이어지는 글에서는 게살로 포를 만든 이야기를 전한다.

"또 다른 한 종류로 자해가 있는데, 온몸이 붉은 자주색이며, 크기는 장독만 하다. 배 속에 창자는 없고 온통 물고기와 새우·소라·다슬기·모래와 돌 뿐이다. 게 껍질은 거의 7~8말을 담을 수 있다. 그 넓적다리와 집게발은 살이 찌고 맛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포(脯)를 만든다. 색깔도 선홍빛으로 예쁘고 맛은 달고 연하니 참으로 진품이다. 이곳 사람들 말로는 큰 게 한 마리에서 포를 만들면 수십 쪽을 얻는다고 한다."

크기와 배 속에 든 포식의 증거 등은 믿기 어렵지만, 게 다리와 발에 든 살로 포를 만들어 먹는다는 말이 매우 흥미롭다. 게살을 발라 포를 만들어 요즘의 게맛살처럼 안주로 즐겨 먹었던 듯한데, 지금에라도 되살려 내 보았음 직한 음식이다. 이어서 나오는 우산잡곡에는 진남문(당시 진해현의 남문) 밖 주점에서 옻칠 소반에 게살로 만든 포를 담아 안주로 내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금 그곳은 진동시장이 들어선 자리로 예나 지금이나 그 쓰임은 비슷하건만, 주패를 내건 술집도 소반 가득 포를 담아 술상 내 오는 손 하얀 처녀도 이제는 없다.

이 밖에도 <우해이어보>에는 참게를 비롯한 7가지 게가 더 소개되어 있는데, 참게만 마저 살피겠다.

"이곳 사람들이 게장을 담글 수 있는 게를 참게(眞蟹)라고 한다. 우리나라 동서북남 모든 바다에 있다. 그중 집게발에 털이 없고 맛이 더욱 좋은 것을 거등해라고 한다."

아래 그림은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다. 바로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이다. 그림에 나오는 게가 참게다. 그림에 나오는 갈대의 한자는 노(蘆)인데, 이 글자는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려 주는 고기인 '려'와 중국어 발음이 같은 데서 착안한 것이다. 소릿값이 같은 갈대를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지는 게처럼 반드시 과거에 합격하라는 축원을 담았다. 오주석 선생의 해설에 따르면 게는 딱딱한 게딱지인 갑(甲)을 가진 갑각류이니 합격의 순서에서도 갑을병정의 첫 번째인 장원을 하라는 의미를 담았고, 나아가 게를 두 마리 그린 것은 소과와 대과에 다 합격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그림에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이라 덧붙인 화제에 담긴 뜻은 바다 용왕이 계신 곳에서도 게걸음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았다. 곧 그런 자리에서도 소신껏 행동하라는 뜻이다.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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