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아너소사이어티 아름다운나눔] (13) 이진규 김해 생명의 전화 이사장

"우리 주변에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순간 누군가 내미는 작은 손이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더 보태고자 제 인생 마지막 큰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이진규(81) 이사장. 그는 지난해 11월 19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기부를 약정하면서 경남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58번째 회원이 됐다. 동시에 최고령 회원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교사의 길은 운명 = 이 이사장은 세종시(옛 충남 연기군)가 고향이다. 가난한 농부의 3남 3녀 중 맞이로 태어난 그는 당시 대부분 농촌 사람들이 그랬듯이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농사라고 해봐야 뭐 없었어요. 논이 고작 5마지기(1000평)도 안됐으니까요. 공부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호사였죠. 중학교 가는 것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옆집 선배가 전해준 원서를 내고 아버지 몰래 시험을 쳐서 덜컥 붙어버렸죠. 결국 아버지가 허락을 하시더군요."

이진규 이사장이 김해 생명의 전화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이후에도 가난은 단계 단계마다 그를 잡아 세웠다.

"학비는 제가 벌어서 다니겠다고 아버지에게 사정해서 어렵게 대학까지 들어갔죠. 장손이라고 허락을 했는데 밑에 동생들은 저 때문에 학교에 제대로 못 갔어요. 너무 미안하죠. 그런데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몇 번을 제적당하고 그러면 아르바이트해서 돈 모아서 또다시 학교 다니고…."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결국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됐다.

"강원도 홍천에서 군생활을 마치고 전교생이 100명 조금 안 되는 산청군 신등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함안, 진주 지역 학교와 도교육청에 파견돼 근무를 하다 마흔 젊은 나이에 교감으로 승진했고요. 이후에는 통영, 김해지역 학교와 도교육청에서 근무하다 쉰 살이 되면서 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다 생활지도장학관, 인사담당장학관, 김해교육장, 김해건설공고 교장을 역임하고 밀양교육장으로 정년퇴임을 했죠."

그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보람찬 일이 더 많았다고 교직생활을 회상했다.

"80년대 말께 전교조가 결성되는 시기에 제가 도교육청 담당 장학관을 맡았는데 참 힘들었어요. 국가에서 지침을 내려 시키는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다 동료 교사들이잖아요. 그때 탄압을 받아 전국에서 많은 교사가 구속되고 해직됐는데…. 그런 갈등과 괴리감 때문에 사표를 제출하려고 했었어요. 대신 생활지도장학관 했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 사고 치면 뒷수습하는 자리라서 제일 피하는 곳이죠. 한 2년 하면서 청소년 문제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때 경험 덕에 나중에 청소년 상담실을 계획하고 그러면서 김해 생명의 전화가 탄생한 겁니다."

◇김해 생명의 전화 = 김해 생명의 전화는 그가 김해교육장으로 재직하던 1993년 만들어진다. 올해로 벌써 23년, 청년기를 맞았다.

"애초에는 청소년 상담실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생활지도장학관 하면서 대화와 상담이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방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법인 설립에 필요한 3억 원을 모금으로 해결하려고 했죠. 한 2억 원 정도 모았는 데 조금씩 잡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당시에 전국적으로 생기기 시작하던 생명의 전화가 딱 매치되더라고요. 그래서 생명의 전화를 출범하고 김해는 여기에 청소년 문제 해결과 진로 지도라는 업무까지 포함해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전화는 1963년 호주에서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는 1967년 이영민 목사가 도입해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19곳으로 퍼져 나갔다. 김해 생명의 전화는 1993년 13번째로 만들어져 4년 전 단독법인으로 독립했다. 도내에서는 유일하게 김해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생명의 전화는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인간존중 철학과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신념으로 세계로 확산했습니다. 현재 김해 생명의 전화에는 120여 명의 전화상담사가 24시간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급 상근 직원이 3명이고, 저와 김병식 원장님은 무급 상근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김해시로부터 수탁을 해 노인통합지원센터를 부설기관으로 운영하는데 이곳에 직원 7명이 근무하고 있어요."

김해 생명의 전화는 고뇌와 갈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고민과 위기,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전화, 사이버 카운슬링 봉사활동이 핵심사업이다. 이 밖에도 시민상담 봉사자 교육, 자살예방 상담 전문가 교육, 청소년 생명존중 양성과정 교육, 좋은 부모 되기 교육, 자살예방 캠페인, 자살예방교육, 노인복지센터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나눌수록 커진다 = 그가 1억 원 기부를 약속한 것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우선 그동안 잘 살았던 데 대한 보답이며 두 번째는 김해 생명의 전화에 조금 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부모 형제를 비롯해 주변 희생과 도움으로 잘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야 할까요. 충남 촌놈이 경남에 와서 괄시·차별받지 않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고맙고요. 물론 평생 선생을 해서 큰돈은 없지만 퇴직 연금 저금해서 만든 돈으로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1억 원 기부 중 일부는 김해 생명의 전화 사업에 사용되기를 바라며 지정기탁을 했다. 청년기를 맞은 김해 생명의 전화가 다시 거듭나는 데 작은 보탬이 되려는 마음이다.

"저는 이사장이지만 돈 10원 하나 받지 않습니다. 그냥 보람만 받아 가는 거지요. 김해 생명의 전화가 23살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사업이 힘들어져요. 돈이 들어갈 곳은 많은데 후원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그렇죠. 그래서 김해 생명의 전화가 더 좋은 일들을 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기부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나눔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처음이 힘들 뿐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적극적인 동참을 권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죠. 살아보니 사실 복이라는 것은 타고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요즘 이야기하는 은수저, 금수저 이야기가 틀린 말이 아니죠. 그렇다고 복이 없는 사람은 한평생 불행하게 살다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주변의 도움으로 잘 살았듯이 그런 도움이 모이면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고민하는 순간 진실한 한 통의 전화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다. 김해 생명의 전화가 항상 어렵게 운영되다 보니 매번 주변에 부탁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마시는 커피 한 잔 값 5000원. 한 달에 5000원, 1만 원 그 정도만 후원을 해도 지금 힘들어하는 이웃 한 사람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기를 바랍니다. 저희에게 후원을 해주면 고맙겠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주변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주고 또 시간이 나면 그들을 위해 몸소 봉사를 실천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내 이웃을 행복으로 이끌고, 나아가 나와 우리 사회를 행복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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