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키우는 지역 출판 움튼다 (3) '펄북스' 출판사

#1 진주에 사는 엄마들이 그림책을 만들었다. <유등, 남강에 흐르는 빛>이다. 오치근 그림책 작가의 지도를 받아서 마하어린이도서관에 둥지를 튼 진주그림책연구회 '도란' 회원들의 공동 창작물이다. 작가의 지도로 회원들은 지난해 7월부터 원화를 그리고 글을 썼다. 아이들에게 읽힐 그림책이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임진왜란 당시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오 작가는 추천사에서 "지역 출판사의 흔쾌한 출판 약속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2 지리산 자락 악양 동매마을에 사는 박남준 시인이 지난해 등단 30주년에 시집을 냈다. <중독자>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지역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 지역에 사는 문화예술인들의 몫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시집을 내는 이들에게 왜 지역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냈느냐고 책망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불쾌해하고 싫어한다는 무리, 말과 삶이 다른 족속 따위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라고 적으며 '말 빚을 갚을 차례'라며 지역에서 책을 출판하게 된 이유를 적었다.

모두 진주 지역 출판사 '펄북스'의 책 이야기다. 지역에 있기에 지역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고, 지역 문화예술인과 교류하며 함께하는 책을 만들 수 있었다. 여태훈(55) '펄북스' 대표는 '진주에서 진주(보석) 같은 책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지난해 2월 '펄북스'를 만들고 7월부터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 '진주에서 진주(보석) 같은 책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지난해 2월 '펄북스'를 만들고 7월부터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여태훈 대표. /김구연 기자

여 대표는 진주에 있는 서점 '진주문고'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1986년부터 '개척서림', '책마을' 등을 거쳐 지금의 '진주문고'를 운영 중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책과 함께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직접 책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난해 이를 실현했다.

"모든 세상의 중요한 일들이 변방에서 시작됐다. '변방의 정신' 그런 것에 충실하고자 한다. 누가 지역 변방이라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있는 데서 보자면 그게 우주의 중심이다"라며 지역 출판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역 콘텐츠가 풍성해지면 우리 삶도 풍성해지리라는 기대를 하고 책을 만든다고 했다.

'펄북스'는 작년 박남준 시인의 <중독자> 시집을 시작으로,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이소이 요시미쓰 지음), 박노정 시인의 <운주사>를 냈다. 올 들어 최근 <유등, 남강에 흐르는 빛>, <백년부부>(지아오 보 지음)도 잇따라 냈다. 앞으로 일본 작가의 번역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여 대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을 발굴하는 지역 콘텐츠뿐만 아니라 좋은 책임에도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품절된 책을 살려내는 일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만든 <백년부부>가 그 예다. 이 책은 중국 <인민일보> 사진기자로 활동한 저자가 자신의 부모를 30년간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펄북스'는 지역에 있기에, 서점을 함께 운영하기에 가지는 장점이 크다. 여 대표는 "지역에 뿌리내린 서점이 출판사를 하는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드문 것으로 안다. 서점을 운영하기에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고, 각 지역 서점인들과 네트워크가 잘 돼 있다"고 했다.

서점에서 '작가와의 만남'도 두드러지게 펼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남준 시인의 경우 지역 독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여러 차례 마련했다. <중독자>는 6쇄까지 5000부를 찍었다. 여 대표는 "우리는 지역 저자들과 탄탄한 관계망을 형성해서 계획부터 출판까지 저자와의 소통이 긴밀하다. 책을 내면서 출간 이후의 저자 프로그램까지 고려한다. 저자가 원고를 출판사에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책을 내고 난 이후의 스토리가 새롭게 생산된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책을 만드는 일은 내 인생의 결정체"라고 표현했다. 책 한 권 한 권에 자신이 생각하는 삶에 대한 자세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은 사람이다. 사람의 모든 것이 책에 응축돼 있다. 책을 통해 저자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책을 내면서 '희로애락'을 하게 된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물도 만들고, 지역의 콘텐츠도 꾸준히 발굴해서 의미 있는 책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펄북스'는 오는 9월 11일 여 대표의 서점 운영 30주년을 맞아 30년간 서점을 운영한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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